말보다 침묵이 진심일 때...

인간관계의 오역(誤譯) : 가식이라는 이름의 다정한 유령

by 신수현

우리 가족은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 부모님과 형제들의 말에는 늘 투박함이 묻어 있었다. 칭찬보다는 흉보는 말투, 다정함보다는 무심한 외면이 식탁 위를 떠돌았다. 하지만 나는 그 거친 언어 속에도 숨은 진심과 온기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겉으로는 서늘하고 무뚝뚝하지만, 속에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 진심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나의 문법이었고, 나의 세계였다. 성인이 되어 세상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에 던져졌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배운 투박한 언어는 여기서 통용되지 않는 고어(古語) 임을...


사람들은 나를 위하는 척, 배려하는 척, 공들여 가공한 언어로 자신을 포장했다. “왜 우느냐”라고 묻는 그들의 다정한 눈빛에 나는 속아 내 안의 가장 연약한 실핏줄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흘린 눈물을, 다음 날 타인의 술상 위에 안주처럼 올렸다. 진심 없는 다정함은, 결국 가해자가 스스로를 면죄하려는 깨끗한 수의와 같다.

그럴싸한 언어들은 나를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은 고립으로 밀어 넣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의 서툰 말투와 정제되지 않은 행동은 타인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내 침묵은 오만으로, 직설적인 진심은 무례함으로 오역되었다. 흥미로운 건, 나를 오해하던 이들이 가까워지면 꼭 같은 말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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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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