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마주하는 용기

나의 상처를 보지 않는다면, 다른 이의 상처를 볼 수 없다.

by 신수현

침묵 속의 균열


여름은 언제나 지나치게 선명한 색채로 기억된다. 그해 여름도 그랬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눅눅한 솜이불처럼 몸을 짓눌렀고, 매미 소리는 고막을 긁어대며 존재를 과시했다. 부엌 식탁 위에는 검은 줄무늬를 두른 거대한 초록색 구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건네준 수박 한 통. 그것은 서늘한 냉기를 품고 있었지만, 동시에 곧 다가올 파열을 예감하게 하는 기묘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칼을 들었다. 가장자리, 그 쓸모없고도 단단한 껍질의 경계선을 잘라내려던 참이었다. 삼각형의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버려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그 귀퉁이들을 도려내려 칼날을 밀어 넣었을 때, 정적을 깨고 '우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수박의 단단한 섬유질이 끊어지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내 육체의 일부가 예고 없이 이탈하며 내지른 비명이었을까?


왼손 약지 끝, 손톱과 살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 콩알만 한 공백이 생겼다. 처음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경이로울 정도로 붉은 액체가 내 지문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점선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길을 잃은 자가 남긴 표식 같았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흩어졌던 붉은 점들이 중심부로 무섭게 결집하더니 이내 둑이 터진 것처럼 흘러내렸다. 나의 일부가, 나의 안쪽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연고라는 이름의 은폐


30년 전의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투박했다. 병원은 멀었고, 부모님은 나의 고통에 유난스럽지 않았다. 건강보험이나 실손보험 같은 현대적인 안전망은 당시 우리 가족의 언어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골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주 치명적인 파열이 아니라면, 몸은 스스로 아물어야 하는 자생적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피를 닦아내고는 연고를 가져오셨다. 아버지는 걱정보다는 그것 가지고 왜 호돌갑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연고는 차갑고 끈적였다.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였으나, 동시에 고통을 가리기 위한 덮개이기도 했다. 나는 그 부위를 건드리는 것이 두려웠다. 아주 작은 스침에도 신경의 말단들이 일제히 날을 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나는 통증을 마주하는 대신, 그 위에 연고를 덧바르고 하얀 붕대를 감는 쪽을 택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나는 그 붕대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붕대의 부피는 커져만 갔다. 연고 위에 또 연고를, 그 위에 다시 하얀 천을 감았다. 상처가 깊어질수록 그것을 감싸는 외벽은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 내 손가락 끝은 이제 원래의 형체를 잃어버린 채, 하얗고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 안의 고통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완강한 거부의 몸짓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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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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