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가까이에서 봐야 자세히 볼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지문이 선명한 안경과 노트북 키보드 사이에 끼어 있는 먼지까지도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그 세세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가까이 있을수록 오히려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보다, 내가 본모습이 그 사람의 모습과 다르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때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부부싸움은 보이지 않는 칼을 서로 들고 휘두르는 것 과 같다. 가까이에서 휘두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만, 적당한 위치에서 휘두르면 그것은 경기가 된다. 검도도 펜싱도 적당한 위치에서 공격하며, 타격을 가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큰 풍경화를 감상할 때 한 걸음 물러서야 전체적인 조화를 볼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적절한 거리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가까이 있을 때 우리는 착각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믿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싸움이 시작될 땐 생각지도 않는 이유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사이에서도 ‘내 딸인데 내가 모를까?’ ‘내 남편인데 나만큼 잘 알겠어?’라고 단언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서로의 내면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내 얼굴을 거울에 가까이 대고 보면 오직 일부만 보인다. 눈을 들여다보면 눈만 보이고, 코를 보면 코만 보인다. 하지만 한 발 물러서면 비로소 얼굴 전체가 보인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감정을 너무 가까이에서만 바라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일부분만 보게 된다. 단편적인 행동이나 순간적인 감정만을 보고 상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사람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의도와 사정까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해가 깊어지고 감정의 골이 생기는 것이다.
한때 나는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에게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조용한 성격인 나는 말수가 적었고, 그 친구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뒤에서 그는 나를 험담하고 다녔다. 내가 친구가 없어서 자신을 만나는 것처럼 말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쟤랑 왜 어울리냐’고 얘기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친구보다 못나지 않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고 믿었던 관계가 결국 상처로 돌아왔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배웠다. 어떤 관계든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적절한 거리는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이혼을 결심하여도 별거기간이 필요하고,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별거는 헤어지는 준비가 아니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연습에 불과하다. 가까운 친구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가족이라도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 거리가 존중될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대화하다가 싸움이 발생하면, 상대방의 화가 사그라지기도 전에 대화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가 사그라진 다음에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의문이 들 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답이 보일 때가 많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두는 것이 아니다. 새 가구를 들여놓을 때,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공간을 확보한 후 가구를 사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거리를 둔다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 감정적인 여유를 의미한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즉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숨을 고르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속에 숨은 의도를 헤아려 보는 것, 이것이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관계에서 거리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그들은 가까워야 할 때와 멀어져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안다. 너무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정을 주고받고, 서로의 삶에 무게를 더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게 지켜본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편안하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서로를 얽매지 않아도 유지된다.
우리는 가끔 너무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친구와 더 깊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상대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이기도 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보게 되면서 오히려 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한다. 때로는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상대를 멀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이해를 위한 과정이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느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거리를 두었을 때 선명하게 보일 때가 많다. 나도, 그리고 상대도. 그러니 누군가를 오롯이 이해하고 싶다면, 가끔은 한 걸음 물러나보자.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짜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