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는 28평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예전에는 10평 남짓한 소형 아파트에서 혼자 지냈다. 두 곳 모두 임대 아파트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28평은 나에게 조금 과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지만 처음 계약할 때는 임대료와 관리비, 대출이자를 계산해 보니 내 급여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동탄에서 봉담으로의 막히는 출퇴근 시간을 줄여보고자 이사를 결심했다. 봉담 세무법인에서 오래 일할 생각으로 계약했지만, 잔금을 치르기도 전에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위약금을 내고 계약을 해지해야 할지, 동탄에 남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계약을 마무리하고 이 집으로 들어왔다.
이사는 기도를 통해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이전 집에서는 큰 방 하나를 침실과 거실로 나눠 사용했지만, 작은 기도방이 있으면 기도를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기도는 핑계였고 난 독립된 방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작은 방이 생긴다면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새로운 집에서 침실, 기도방, 작업실을 따로 갖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넓어진 공간이 썰렁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큰방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을 채우는 데 열중하게 되었다. 수입이 늘면서 책상, 의자, 스타일러, 김치냉장고, 기타, 전자피아노, TV, 식탁까지 하나둘 들여놓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나 아파트 갱신 시기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사람을 따라 회사를 옮겼고, 성과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거기에 대출이자가 두 배로 뛰면서 부담이 커졌다. 이후 수입이 줄어들며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넓어진 집에 맞춰 늘려놓은 물건들은 이제 내게 부담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와 관리비, 대출이자를 고려하며 다시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근마켓과 중고 카페에 올려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넘겼다. 새것처럼 아꼈던 물건들이었지만, 막상 팔 때는 반값도 받기 어려웠다. 그래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나씩 내놓았고, 물건을 줄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필요한 물건들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집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사를 하면서 식탁을 구입하였지만, TV를 보며 식사할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결국 거실에 좌식 테이블을 놓고 생활했다. TV 앞에서 식사를 하면 방송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웠고, 식사가 끝나도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무료 나눔으로 좌식 테이블을 정리하자 거실이 넓어졌다.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TV는 보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변화였지만 생활 패턴이 달라졌다. 시간이 여유로웠고, 집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건을 팔고 나면 허탈할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토록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없어져도 내 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공간이 넓어지고, 청소가 쉬워지며 삶이 단순해졌다.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고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도 떠올랐다.
과거의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내게 도움을 줄 것이라 믿었으며, 때로는 그들에게 의존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나를 필요에 의해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때는 그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꼭 필요한 관계는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가구를 정리하는 것처럼, 나에게 유익하지 않은 관계들도 정리해야 했다.
미니멀라이프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늘 친구들을 만나고 약속을 잡으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불필요한 관계는 나에게 ‘종기’와 같았다. 처음에는 필요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나에게 해를 끼쳤다. 종기를 도려내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애초에 나에게 해가 될 관계들은 처음부터 맺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일상에서 삶을 배운다. 이 집에서 더 오래 살게 될지, 더 작은 곳으로 이사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다시 집을 넓히더라도 불필요한 가구를 늘리지 않을 것이고,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관계를 선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물건도, 사람도, 내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만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