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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_침묵 속의 길

길을 그리는 바늘, 침묵 속에서 나의 길을 찾다

by 신수현

침묵 속에서 길을 찾다

길을 찾는 일은 언제나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학창 시절, 지도를 읽는 것도 힘들었고, 지구본을 돌리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길을 이해하는 데 서툴렀고, 기호를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서울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갔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는 이웃집으로 쉽게 뛰어가곤 했지만, 서울은 비슷한 집들이 모여 있어 헷갈리기 쉬웠다. 할머니 댁인 줄 알고 문을 열었지만, 낯선 집이었다. 순간 길을 잃은 것 같아 두려웠고, 되돌아가려 했지만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익숙한 골목길을 찾아 무사히 돌아갔지만, 그때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 자취를 하며 출퇴근을 하던 시절, 어느 날 저녁에 잘못된 버스를 탔다. 90번을 타야 했는데, 비슷한 번호인 90-1번을 탔다. 두 노선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고, 종점에 도착해서야 실수를 깨달았다. 친절한 버스 기사님 덕분에 다시 올바른 버스를 탔지만,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나를 기다리던 오빠는 걱정에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다. 그 시절엔 핸드폰이 없어서 공중전화로 연락해야 했고, 나는 오빠가 외출한 사이 안절부절못하며 다시 연락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언니가 있는 춘천으로 간 적도 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지도와 이정표에 의존해야 했다. 길이 맞는지 몰라 중간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언니는 "거의 다 왔어"라고 말했다. 결국 무사히 도착했지만, 돌아오는 길은 더 험난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이 표지판만 따라가다가 한참을 헤맸다. 다행히 한 아저씨가 나를 따라오라며 길을 안내해 주었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잃기 쉽고, 있어도 방심하면 길을 헤맬 수 있다는 것을. 스마트폰에는 여러 개의 내비게이션 어플이 깔려 있고, 차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길은 저마다 달랐다. 익숙한 길이라 자신했지만 예상치 못한 길을 만나 당황하는 순간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삶에서도 방향을 잃고 떠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늘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나보다 성공한 사람의 경험과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리키는 대로, 흔들리는 바늘을 따라 길을 걸었고, 어느새 내 발자국이 그 길 위에 채워졌다. 그래서 나의 삶은 항상 흔들렸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바늘

나침반은 예민한 친구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바늘 끝을 보면, 마치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고, 방향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침반은 끝내 중심을 잃지 않는다. 어떤 방향에서든 북쪽을 가리키는 법을 잊지 않는다. 나는 그 점이 늘 신기했다. 나의 마음은 이렇게 흔들리는데, 어떻게 저 작은 바늘은 끝내 길을 잃지 않을까.


나침반이 침묵하는 순간, 바늘 끝은 고요해진다. 오직 침묵해야만 길이 열린다는 것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흔들리는 바늘이 방향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듯, 내 마음도 그러했다. 때로는 가만히 기다려야만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꾸로 가는 길도 결국 정상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정상적인 길, 올바른 방향, 정해진 코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 있을까? 나는 나침반을 들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이 오직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때로는 뒤로 가는 길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산길을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처음에는 후회했다.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까웠다. 하지만 되돌아가는 길에서야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내려가야만 오를 수 있는 길도 있었고,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길도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걷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닐까.

때때로 우리는 거꾸로 가는 것 같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길도 결국 나에게 꼭 필요한 길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것, 나침반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정상은 어디일까

침묵 속에 떠오르는 길과 마주할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의 정상은 어디 있니?" 우리는 보통 정상을 목표로 삼는다. 높은 곳, 남들보다 앞선 곳, 더 많은 것을 가진 곳. 하지만 정상은 반드시 그런 곳이어야 할까?


언젠가 한 친구가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목표를 정하지 않기로 했어. 그냥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목표야."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목표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삶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정해진 정상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 자체가 정상이라면,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흔들려도, 돌아가도 괜찮아

나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다. 흔들리고, 휘청이고, 돌고 돈다. 하지만 나침반은 잃지 않는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알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준다.

길을 잃는 것 같아도 괜찮다고. 돌아가는 것 같아도 괜찮다고. 중요한 것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고, 나침반이 손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려도, 나는 다시 길을 찾을 것이다. 내 떨림도 불완전함 속에서 끝내 침묵으로 방향을 밝히리라. 그리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든, 그것이 곧 나만의 정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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