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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ory Jun 29. 2023

칫솔이 준비물?

드디어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을 앞둔 일주일 전, 나는 낯선 번호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신을 같은 학교 Senior (미국 고등학교는 4년으로, 1학년은 Freshman, 2학년은 Sophomore, 3학년은 Junior, 그리고 4학년은 Senior이라고 한다)인 Zach이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 주에 있을 오리엔테이션에 내 멘토라고 했다. 


조금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을 모두 알아듣지는 못했다.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도착해야 하는 시간, 준비물 등 안내를 해주었다. 준비물 중에는 Paint Brush (페인트 붓) 이 있었는데 10대의 특유한 빠른 말투와 전화 목소리가 합쳐져서 그런지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고 Brush 만 알아들었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Brush는 Toothbrush, 칫솔뿐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오는데 칫솔을 가져오라는 건가..? 굉장히 의아했다. 무언가 전화로는 내가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더 할 수 없던 느낌이어서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고민했다. 과연 정말.... 칫솔을 가져가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입학 전, 미국에 모든 생활과 언어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Zach의 전화 한 통에 갑자기 (왜인지 모르게) 엄청 위축이 되었다. 


그렇게 오리엔테이션 당일, 나는 '그래도 안 해보는 것보단 무조건 해보는 게 낫다!'라는 마인드를 기억하고 당당하게 칫솔을 가져갔다. (안 보이도록 주머니에 잘 넣어서)


< 나의 미국 학교생활 시작을 알린 고등학교 모습. 지금의 내 가족과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모두들 페인트를 할 때에 쓰는 붓을 들고 있었다. 

< Zach 이 가져오라고 했던 Paint Brush >


한 백인 아이가 내게 다가와 Brush 가 어디 있냐고 물었다. 나는 "Brush라고 알아들어서 칫솔 가져오라는 건 줄 알았어"라고 하며 주머니에 잘 숨겨둔 칫솔을 슬쩍 보여주었다. 그 친구는 친절하게도, It's okay 라며 내게 작은 붓을 하나 빌려주었다. 


우리 학교는 신입생들을 위한 전통적인 행사가 있다. 학교 뒤에 산에는 산 정상 즈음에 크게 M이라고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고등학교 이름이 M으로 시작한다), 학교 신입생들은 항상 입학 시에 산에 올라 그 M 자를 다시 새롭게 페인트 하는 전통이었다. M이라는 글씨는 1964년 졸업생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 지금까지 매년 신입생들이 산을 올라 M이라는 글씨에 페인트칠을 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 멀리 보이는 M의 모습 >

학교 앞 공터에서 나와 같이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인원체크를 하고 있었고 (우리 학교는 1학년 ~ 4학년까지 전교생이 약 280명으로 매우 작은 가톨릭 사립학교였다) 어디선가 Mr. Kim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솔 담당 선생님이 나를 찾고 있었는데 70명 정도 되는 10대 백인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나는 정신이 없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당황하고 있었다. 전체 신입생 중 Mr. Kim 은 누가 봐도 나 한 명뿐이었고, 주변 학생들이 내게 "너를 찾고 있는 거야"라고 알려주며 나 대신 인솔 선생님에게 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같은 신입생들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M이 있는 곳에 도착하여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했다. 

< 산에 올라 M을 칠하고 있는 1학년 학생들 모습 >

산을 오르고 페인트칠을 하고 다시 산을 내려가 학교로 가는 내내 혈기왕성한 10대들의 매우 빠른 말들은 계속해서 나를 당황하게 했고, 내가 신기해서인지 오리엔테이션 내내 옆에서 새로운 학생들이 계속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해서 정신이 없었다. 


학교로 돌아와 학교 내 강의실, 강당, 체육관 등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었고 수업 스케줄 안내를 받는 등 많은 것을 했던 것 같은데 이미 내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기에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나 혼자 또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외감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또 다른 모험이 펼쳐진 느낌이랄까)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머릿속에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과연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까? 수업은 잘 들을 수 있을까? 왕따가 되면 어떡하지? 등 이것저것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도 설레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CH.02는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다룹니다. 


CH.01은 고등학교 입학 전 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CH.01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brunchbook/shinstory-c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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