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보는 내 아내의 나라, 러시아
나는 농담으로 나를 '대한미국인'이라고 칭한다. 오랜 기간 성장기를 미국에서 보내며 미국인이 되었으나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른 말로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방인'이고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를 위로하며 스스로를 농담으로 대한미국인이라 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면서 내가 '러시아'를 여행해 보겠다 는 생각은 사실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자라온 환경 속에서 내게 주입된 '러시아'라는 나라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테러조직, 혹은 테러장소로만 나오며 추운 시베리아, 무서운 푸틴과 보드카의 나라일 뿐이었다.
러시아 아내를 만나고부터 러시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북한을 지원한 소련국가,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으로서 미국과 유일하게 맞서는 또 다른 건너편의 초강대국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러시아 '국가'로서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사회에서 러시아에 대한 내용을 잠깐 찾아봐도 사실 안 좋은 얘기가 대부분 아닌가.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2년째가 되었을 때, 코로나로 인한 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드디어 나는 러시아를 방문해 장인장모님을 직접 뵙고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를 하려고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가 너무나 빠르게 확산되며 여행 규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외동딸인 내 아내의 결혼식을 장인장모님 없이 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의 결혼식은 무기한 연장되었었다.
러시아에 가기로 결정하였을 때, 막연한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 역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이 얼마나 편파적인 사고 때문에 우린 우리의 하나뿐인 인생의 경험을 못하고 있는가!) 하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이 (아내에게는 '국내여행'이지만) 아내의 조국이라는 것은 뜻깊었고 설레었으며 결혼생활 수 처음으로 아내의 부모님께 직접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기에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때 당시에 국제정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라는 언론보도가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였지만, 한 번뿐인 인생에서 안 가본 해외 나라를 경험해 보는 것에 '다음기회' 따위는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2년이 다되도록 부모님을 직접 뵙고 인사도 못 드린 사위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전쟁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실제로 전쟁이 시작되기 몇 개월 전이었다) 기사 따위는 내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여유로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나름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되돌아보면 가장 설레었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신혼인데 아내와 함께 첫 해외여행이니 그럴 수밖에.
그렇게 우리는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내의 부모님은 올림픽을 개최했던 소치 근처 (한국에서의 근처가 아닌 러시아 개념에서의 근처. 소치에서 부모님이 계신 곳 까지는 비행기로 약 두 시간이 걸린다)에 살고 계셨는데, 처음 러시아에 가는 나를 위해 우리는 모스크바에 들려서 약 4일 정도 모스크바 구경을 하고 아내의 부모님이 계신 도시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러시아 땅을 밟았다. 그리고 러시아는 서방사회에서 만든 이미지는 모두 틀렸다는 듯이 나를 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