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괜찮다는 착각

프롤로그

by 날큐

왜 책을 읽기 시작했냐고?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동안 왜 읽지 않았냐고?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책 없이도 잘 살아왔다.



얼핏 보면 난 참 괜찮다. 준수한 외모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을 나왔다. 별다른 실패 없이 대기업 재무팀에 입사했고 회사 생활 내내 에이스로 불렸다. 그리고 누구나 의아해할 만한 시점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을 내 의지대로 살고 있다.



'얼핏 보면'이란 말은 주의를 요한다. '얼핏'이란 녀석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지나는 결에 잠깐 나타나는 모양'. 우선 '잠깐'에 눈이 간다. 쓱 본다는 거다. 깊이 있는 관찰은 없다. 겉모습이나 제대로 보면 다행이다. '지나는 결에'도 거슬린다. 애당초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애정이 있을 리 없다. 어쩌면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종합해 보면, 나는 애정 없이 그냥 쓱 보면 괜찮은 사람인 거다.



실상은 이렇다. 자랑이었던 커다란 눈 윗부분엔 어느샌가부터 쌍꺼풀도 아닌 주름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해당하는 것이 자리하고 있다. 아니,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건조하거나 컨디션이 떨어질 땐 미토콘드리아가 분열을 하듯 두 개로 늘어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대학은 사실 4수를 해서 입학했다. 덕분에 동기들 대부분은 나를 오빠나 형이라고 부른다. 더군다나 경영학은 복수 전공한 거라 누가 물어보기라도 하면 무언가 찜찜하다.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하는 대신 경영학 학위가 있다고 얼버무리고 만다. 실패 없이 입사에 성공했다는 것도 그리 자랑스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위기로 자리가 줄었다는 핑계를 대며 진짜 가고 싶었던 회사들은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적당히 붙을 가능성이 있는 곳에 지원하였고 적당히 붙었다. 퇴사의 과정도 그리 멋있지는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힘든 도전의 길을 택한 쿨함은 없었다. 대신 현실적인 이유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심지어 성격이 급한 탓인지 경제적 자유를 얻기도 전에 자유까지 얻어 버렸다.



지난 사십 년 동안 남들이 얼핏 본, 진실되지 못한, 그러니까 가짜 내 모습을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았다. 아니, 믿는 척했다. 약간의 꺼림칙함은 있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물론 나를 얼핏 본 사람들에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들은 마음이 흔들릴 때면 여지없이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 여지없이 착각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착각이 신념으로 변해 갈 무렵, 변화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일생동안 칠 사고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했던가. 왕년의 모범생이었던 내가 드디어 그동안 칠 사고를 모두 더한 것보다 더 큰 한 방을 날렸다. 십 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아무 계획 없이 그만둔 것이다. 그것도 서른아홉에. 무모한 퇴사에는 계획도 없었지만 이유도 없었다. 굳이 이야기하라면, 남들이 치켜세워준 나보다 회사에서의 내가 대단치 않게 느껴진 정도?



하지만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다. 물음표 가득한 결정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덕분에 나는 마흔에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지난 5년 간의 여정을.


그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