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도쿄는 아름다웠다. 신카이 마코토의 열혈팬인 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벚꽃잎이 정말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질까?' 하는 호기심도 잠시. 메구로 강을 따라 나있는 벚꽃 길을 걷기 시작하자,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난 생일에 불었던 초의 개수도 잊은 채, 잠시나마 중학생인 타카키 - 초속 5센티미터의 남자 주인공- 가 되어 버렸다. 해가 진 후의 나카메구로는 더욱 좋았다. 아직은 찹찹한 4월의 저녁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반해, 떨어지는 수많은 벚꽃잎들이 조명에서 나오는 불빛을 튕겨내며 강 주변은 마치 타오르는 것 같았다. 벚꽃 길에서 느꼈던 촉각과 시각 사이의 괴리감은 내가 처한 현실의 모순적인 상황과 닮아 있었다. 당시 내 마음속에는 취소될 수도 있었던 휴가를 왔다는 안도감과 구체적인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둔 불안감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도 좋았고, 일도 좋았고, 심지어 운까지 좋았다. 입사하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 잘하는 선배들이 부서를 떠났다. 당시 과장님은 사내 유학생으로 선정되어 영국으로 떠났고 대리님은 회사가 풍력사업에 진출하며 설립한 미국 자회사로 장기 파견을 갔다. 덕분에 고생은 좀 했지만 빠르게 핵심업무를 꿰찰 수 있었다. 부서의 주요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분석하여 경영진께 알리는 것이 한 가지. 그들의 생각을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것이 나머지 한 가지였다. 유능한 사원이 되는 데는 이성과 논리, 최소한의 글쓰기 능력, 그리고 약간의 눈치면 충분했다. 이 역할은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했다.
어찌 보면 회사 생활은 나에게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뼛속까지 메이저인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실제 내 삶은 그렇지 못했다. 중심에 서고 싶었지만 잘 안 됐다. 그렇다고 변두리는 아니었다. 대개 핵심에서는 약간 벗어난, 그렇다고 가장자리는 아닌, 그 중간 어딘가였다. 애매했다.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지만 한 번도 일 등을 해본 적이 없다. 원하는 대학은 갔지만 주류가 되기에는 조금(?) 늦게 갔다. 게다가 전공을 포기하고 학교 이름을 선택한 탓에 타과생 신분으로 경영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런 내 인생에서 회사는 처음으로 나에게 정중앙에 서는 것을 허락했다. 핵심 조직의, 그것도 핵심 부서의, 그것도 핵심 인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9년 남짓한 기간은 용의 꼬리가 뱀의 머리보다 낫다는 나의 신념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회사가 나의 마음만 어루만져준 것은 아니다. 당시 회사는 무려 대기업 초봉 서열 1위 - 아쉽게도 초봉만 그랬다 - 를 자랑하고 있었다. 급여에 걸맞게 복지도 최고 수준이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회사는 나와 - 가끔은 내 가족과 - 함께 해주었다. 심지어 평생을 담배 한 개비 피워본 적이 없는 내게 금연지원금까지 주기도 하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나는 짧다면 짧은 기간에 회사의 흥망성쇠를 경험했다. 아니, 회사와 함께 흥하고 망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다.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처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부서장님께서 말씀하였다. "OO 씨는 운이 좋은 거예요. 현금이 3조 원이 넘는 회사에 들어온 것을 보면" 약간의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 실제로는 2조 원 정도였다 - 상황이 좋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성장세가 가팔랐다. 덕분에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 대게 돈이 많고 커가는 회사는 이것저것 일을 벌인다 -. 뿐만 아니었다. 당시 회사가 속한 산업은 국내 1위가 곧 세계 1위인 유일한 분야였다. 갑오경장(甲午更張)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수를 받을 때 지역주민들 - 대부분 할머니셨다 - 이 창문을 열고 우리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어 주시는 진귀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회사가 서서히 병들어갔다. 일부 경영진의 개인적인 탐욕이 세계에서 순위를 다투던 회사를 막바지까지 몰고 갔다. 파국의 결과는 오롯이 직원들에게 돌아갔다. 박수가 비난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지며 우리는 순식간에 나라를 빛낸 애국자에서 세금만 축내는 부도덕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핵심인재라는 타이틀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는 정부 부처와 협력하여 구조조정에 대한 기획들을 쏟아내야 했고 -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만 둘 사람들을 선별하는 일만큼은 피했다는 점이다 -, 그 계획들에 맞추어 동료들이 짐을 싸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회사 밖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퇴사 전 내 마지막 임무가 채무조정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회사 1층에는 특이한 카페가 있었다. 중공업 회사에 어울리지 않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콘셉트로 꾸며진 야외 테이블을 가진 카페였다. 한쪽 구석에는 풍력터빈 모형 몇 기가 밤낮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사업으로 풍력에 발을 담갔으니 풍차는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왜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장님의 특이한 취향이었으리라. 아무튼, 퇴사를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풍차 날개가 몇 바퀴 도는 동안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회사의 위기는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 개인이 다니기엔 충분히 괜찮은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경영 정상화의 일등공신 - 정확히 표현하면 일등공신의 지시를 받는 실무자 - 이었다. 위기가 일단락되면 보상을 기대해 볼만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유는 모르겠다. 새로움에 목말라했던 거 같기는 하다. 정말 이것뿐이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그보다는 대학시절의 애매한 위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