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앎과 모름의 경계선에서는 과거라는 녀석이 익숙함의 벽을 쌓고 있다. 시작은 제주도 돌담처럼 나지막하지만 점차 《진격의 거인》에서나 볼 수 있는 방벽이 되어 간다. 벽이 높아질수록 벽이 만들어내는 그늘도 커진다. 넓어진 그늘 속에서 벽 안의 자아는 편안함을 느낀다. 안다는 것은 마치 잠든 아이의 가슴에 올린 엄마의 손과 같다. 우리에게 묵직한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다. 인간은 안정감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한 세계는 편안함을 주지만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삶이 정해져 있다면 자살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에렌 예거 -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 - 가 되어 벽 밖의 세계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새로움의 야누스적인 면모이다. 두렵지만 즐거움을 주는.
기어코 벽 밖으로 나오고야 말았다. 더 이상 아는 세계의 편안함은 없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느낄 겨를조차 없이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단순히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선로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동안 너무나도 충실하게 세상의 요구를 따랐기에, 그 충격도 컸다. 쌓아온 것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이뤘다고 생각한 것들 대부분은 벽 밖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쓸모 있지 않았다. 얼핏 보면 나를 괜찮아 보이게 하는 것들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나는 막부시대의 닌자와 같았다. 주어진 미션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혼자서도 충분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젠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되었다. 닌자와 장수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장수의 역할은 일기토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젠 개인기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을 하게 해야 한다.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하게 하고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리더에게는 모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어야 하며, 일처리가 신속하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심지어 여러 명이 같이 일하는데도 혼자서 일할 때보다 더 외롭다.
회사에 있을 때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획 부서의 특성상 보고 시간이 중요했는데 - 대개 보고 후에는 보고를 받은 사람의 지시가 있고, 그 지시에 따라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자료를 보충하는 것이 내 주요 업무 중 하나였기 때문에 -, 이게 나를 괴롭혔다. 임원들이 보고 시간을 결정하는 과정은 꽤나 과학적이었다. 그리고 인간적이었다.
보고의 고수들은 오전 시간에 보고하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사장님 - 혹은 부사장님 - 의 기분이다. 조금 고급스럽게 이야기하면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출근 직후에는 기분이 좋지 않다. 웜업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 일찍부터 방문하는 보고자가 반가울 리 없다. 게다가 밤새 충분한 휴식을 취한 뇌가 아직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 싱싱하다. 정리하면 기분은 안 좋은데 머리는 팍팍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과는 뻔하다. 오전의 사장님은 대개 빨간펜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보고서는 빨간색으로 도배되고 만다. 반면 점심시간 직전은 보고자가 선호하는 시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밥 먹기 전에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고, 밥을 먹으러 가려면 사소한 부분을 짚고 넘어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절대 중요도 높거나 내용이 길고 복잡한 보고는 피해야 한다. 사장님의 소중한 식사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면 사장님은 또 한 번 빨간펜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가장 좋은 시간은 퇴근시간 무렵이다. 우선 사장님의 기분이 좋다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다 -. 그리고 하루종일 수많은 의사결정으로 지쳐버린 뇌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다. 게다가 사장님은 거의 매일 저녁약속이 있다. 보고에 있어서 최상의 조건이다.
재무팀은 사내에서 힘 있는 조직이었다. 그 덕에 가장 좋은 보고 시간 - 어디까지나 보고를 하는 임원 입장에서 - 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나에게 새로운 지시사항이 떨어지는 시간은 주로 저녁식사 무렵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매번 당황스러웠다.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부터 시작하여 새벽에 퇴근하다니. 게다가 나는 시간의 효율성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는 부류의 인간이다. 내 의지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효율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퇴사 후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벽 밖의 세계에서는 자유조차 부담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따로 있었다. 더 이상 나에게는 지시를 내려줄 상사가 없었다. 이젠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닌 '무슨 일을 해야 할까?'부터 고민해야 했다. 주는 먹이를 잘 먹는 것과 먹이를 잘 잡는 건 무척 달랐다. 나는 이미 사육사가 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있었다. 먹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어떤 먹이를 먹어야 할 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학원만 있으면 일등 할 수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하위권을 맴돌던 동기 녀석이 했던 말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상위권이었는데 대학에 와서는 도무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던 거 같다. 벽 밖의 나는 이 녀석보다 더한 꼴이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정해진 교재와 시험 범위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벽 밖의 세계는 냉혹했다. 나에게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배워야 했다.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가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모든 개인은 전문적인 학생 - professional student - 이 돼서 평생 공부해야 한다. 학생이 직업이 된 세상에 살아야 된다." 그는 틀렸다. 앞으로가 아니라 지금이다. 적어도 나는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