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모임을 하게 되었다. 거창한 의미는 없었다. 당시 아내와 처형과 나는 주기적으로 술자리를 갖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처형이 아닐까 한다 - 매우 건설적인 제안을 하였다. "매번 술이나 마시는 거보다는 책을 한 권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어때?" 세 명 모두 즉석에서 동의하였다 -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합의에 이르기 쉬운 법이다-. 내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마침 어디선가 '트레바리' 케이스를 읽고 독서모임에 관심이 가던 차였다. 게다가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독서모임 경험이 있었다. 나 같은 초보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이미 상당한 독서가였고 책에 대한 의미 있는 지혜를 건네줄 것만 같았다.
독서의 경력만큼이나 서로의 관심 분야도 달랐다. 당시 내 독서는 골프로 치면 똑딱이를 연습하는 단계였다. 취향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도움이 될 거 같은 책만 찾아다녔다. 반면, 수십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두 사람은 확고한 취향과 관심사가 있었다. 아내는 정신과적 질환에 관심이 많았고 여자들의 이야기에도 흥미를 보였다. 처형은 기본적으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을 선호하였으며, 기자 출신답게 사회 문제나 정치적 이슈를 다룬 책들도 좋아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답게 독서모임 책을 돌아가면서 고르기로 했다. 또한 동방예의지국의 정신을 계승하여 제일 연장자인 처형이 첫 책을 추천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모임의 첫 책이 결정되었다.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였다. 간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는 바로 그 책이다. 하지만 당시 내가 그런 걸 알리 없었다. 학교에서 어설프게 배운 경제학 - 심지어 경제학과도 아니다 - 의 잣대로 엄청난 고전을 평가하였다. 아니 폄하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지금은 어렴풋이 안다. 러스킨이 얼마나 앞서가는 생각을 했고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도 벅차다는 것을. 이런 위대한 책을 몇 개월차 초보가 깐(?) - 고상한 표현으로는 도저히 뉘앙스가 살지 않는다 -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오만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견뎌낸 아내와 처형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 후로도 멤버들은 의외의 책들 - 어디까지나 당시 내 기준에서 - 로 독서 리스트를 채워나갔다. 심지어 그들이 고른 책은 두꺼운 경우가 많았다. 일부 책들은 색채가 강해 거부감마저 들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독서모임을 그만두려 했다. 시간 낭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말려 준 아내를 고맙게 생각한다. 독서모임은 나의 독서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의 장점은 꽤 있다. 특히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우선 자발적 강제력에 기대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다. 또 운이 좋다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혹은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읽은 내용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많은 이점들이 있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스스로는 읽지 않았을 법한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을 선택하겠다.
독서의 폭은 중요하다. 특히 초보에게는 그렇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점차 독서 취향이란 게 생긴다. 특정 장르가 될 수도 있고, 특정 분야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작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모른다. 자칫 너무나도 광활한 책의 바다에 빠져 독서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물만 먹고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독서 모임이 유용하다. 초보 독서가에게는 등대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넓은 독서가 초심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독서는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의식의 영역에서는 깊이 있는 독서가 효과적이다. 같은 주제 - 혹은 소재 - 의 책을 몇 권 읽다 보면 중요한 내용이 반복된다. 지식은 자연스레 습득된다. 가끔은 주장이 상충되는 책들을 만나기도 한다. 행운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의 관점은 독자를 생각하게 한다. 양 끝단 사이, 자신만의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지식은 진짜 내 것이 되어 간다. 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지식들이 연결되며 찾아온다. 이때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저 생각의 재료를 쌓아 놓고 충분히 자고 적절히 쉬면 된다. 그뿐이다. 나머지는 무의식의 몫이다. 이것이 인간이 우연을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의외의 책들은 편협한 사고를 바꿔주기도 한다. 아니, 적어도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경각심 정도는 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점이 독서모임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밖에 모르던 내가 처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불합리함에 분노했다. 또한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며 권력을 잡는 행위가 얼마나 악한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아내가 추천한 책으로 기억한다 - 은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책이다. 상당히 민감한 주제를 다룬 책이고, - 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 작가의 주장은 상당히 급진적이었다. 책은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일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변론을 담고 있다. 그리고 저자 김원영 씨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반어적인 제목도 상당히 강렬했지만, '자발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언젠가는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읽어볼까도 고민했지만 왠지 두렵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성숙한 내가 읽었으면 한다. 시간은 좀 필요하겠지만.
'고집독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2년 여만에 끝난 모임이지만 나의 독서, 더 나아가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음 꼭지에서는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인생 책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