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by 날큐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시골'에서 전학을 왔다. 흔히 지방 도시들을 잘못 부르는 시골 - 부산 출신인 아내를 무척 화나게 하는 말이다 - 이 아닌, 여름이면 누렁이와 냇물에서 멱을 감는, 진짜 시골이다. 그 아이는 체구가 자그맣고 말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故 이건희 회장을 닮았던 것도 같다. 그땐 그 누구도 막 상경한 회색 빛깔의 소년이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보란 듯이 첫 시험에서 8학군 학교의 정상에 섰다. 무려 입학 이후 줄곧 일등을 놓치지 않던 동기를 밀어내고서 말이다. 은근히 시골내기를 깔보던 아이들의 두 손을 단숨에 단전 앞으로 모으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공부계의 마동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는 확실한 필살기가 있었다. 바로 '꾸준함'이었다.



8시 반까지 등교를 하면, - 7시 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9시에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30분 정도의 틈이 남는다. 아침에는 교내에 있는 매점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교칙에 순응하는 대부분은 친구들과 잡담이나 하며 그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스타가 된 촌놈은 달랐다. 버리는 시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일단 학교에 오면 워크맨 - X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소형 음악기기 - 으로 잠재적 방해꾼들을 원천 차단한다. 그리고 하이레벨 - X세대 사이에서 유명했던 고난도의 수학교재 - 을 편다. 그리고 하루에 다섯 문제씩 푼다. 이 단순한 루틴의 힘은 대단했다. 대부분 사기만 하고 책장에 처박아 두는 수학책을 일 년 동안 마스터했으니 말이다.



나도 나름 꾸준히 하는 데는 자신이 있다. 꾸준함은 나의 경쟁력이다. 사실 나는 산만하다. 무언가에 장시간 몰입하기 어렵다. 다만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산만한 내가 산만한 아이들을 혼내는 선생님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전략가 기질이 있었는지 나는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가늘고 길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꾸준함'이라는 나의 비기(秘技)는 꽤 효과적이었다. 변변치 않은 성과들을 꽤 이뤄냈으니 말이다. 독서를 시작했을 때도 꾸준함만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유는 단 하나다. 독서는 대개 당장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즉각적인 성과를 내야 힘이 나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책을 읽은 오늘의 나를 칭찬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달성의 잣대가 있어야 했다.



우선, 양적지표로 접근해 봤다. 아무래도 숫자가 기록하기도 쉽고 평가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처음 택한 기준은 '책을 몇 권 읽었냐'였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였다. 매일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느릿느릿 읽는다. 때문에 책 한 권을 읽는 데 빠르면 며칠, 늦으면 몇 주가 걸린다. 바꿔 말해, 무언가를 달성했다는 기분을 빠르면 며칠, 늦으면 몇 주에 한 번밖에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녀석은 분량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라면 받침으로도 쓰기 힘든 얇은 책이 있는가 하면, 베개로나 쓸법한 두께의 책들도 있다. 표준화되지 않은 지표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건 패스!



다음은 '읽은 페이지의 수'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난이도가 달랐다. 《아무튼, 술》과 같이 술술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괴델, 에셔, 바흐》와 같이 고행을 하듯 읽어야 하는 책도 있었다. 게다가 지표가 책을 읽는 본래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았다. 성과를 내기 위해 책을 너무 빨리 읽으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었고, 제대로 읽는다는 구실로 책을 너무 느리게 읽으면 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준을 여러 번 조정해 봤지만, 결국 이것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하게 된 것이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이다. 나는 평소에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인스타는 그렇다. 사진 찍기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인스타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독서 기록을 남기기에는 적합했다. 일단 내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간편했다. 간단한 사진과 함께 몇 자 적으면 그만이었다. 길지 않은 글에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 반면 브런치스토리에 지나치게 짧은 글을 올릴 때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그때그때 기록할 수 있었다. 이건 나에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나의 깨달음은 휘발성이 강해서 그 시점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대개 유통기한을 넘긴 그릭 요거트처럼 시큼하게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스타는 시각적인 부분에 특화된 플랫폼이다. 아무리 독서를 위해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잘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간편하면서도 과히 떨어지지 않는 사진이 필요했다. 특별한 사진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능력을 보완해 줄 장비도 없었기에 나는 우선 필사를 선택하였다.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빳빳한 종이를 사서 그 위에 쓰기로 했다. 잠깐의 검색으로 나는 알게 되었다. 종이의 세계가 꽤 심오하다는 것을. 우선 종류가 많았다. 백상지, 모조지, 스노우지, 아트지 등등. 이것만이 아니었다. 각 종류 별로 그램수가 있었다. 120g, 150g, 200g 등등. 어찌어찌 120g 백상지를 고르게 되었다.



다음은 필기구였다. 필사는 연필이지 하는 고루한 생각으로 위대한 작가들이 사랑했다고 한 블랙윙 연필을 샀다 - 아내가 나를 상업적인 마케팅에 가장 취약한 유형의 인간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 매트블랙이 가장 유명하다고 해서 샀는데 써보니 거의 데생에나 쓸 법한 짙기였다. 그 후 602, 내추럴 등 다른 모델도 - 배송비 절약 차원에서 모두 다스로 - 샀다. 연필깎이도 연필의 품격에 맞는 것으로 구비하였다. 연필 보호캡, 몽당연필 익스텐더 등등 이십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출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연필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샤프를 선택하였다. 그 후로도 마흔의 템빨은 그칠 줄을 몰랐다. 샤프의 세계도 심오했기 때문이다. 결국 십여 만원을 더 지출하고 나서야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나는 필사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야심 찬 계획은 그렇게 포기하게 되었다.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업로드 시간이었다. 나는 '인스타 시간대'로 구글링을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와 저녁 7시부터 9시가 좋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은 보통 새벽시간이라는 것이었다. 선택은 두 가지였다. 피크타임을 포기하거나, 새벽에 저장해 둔 포스팅을 나중에 올리거나. 당연하게도 후자를 택했다. 새벽에 올리는 인스타를 누가 읽는단 말인가. 처음에는 잘 굴러갔다. 하지만 일이 터져 버렸다. 새벽에 몇 시간 동안 정성껏 쓴 독서 리뷰 3개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또다시 구글에 물어보니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날려 먹고 나서야 황금시간대를 포기할 수 있었다. 이젠 그냥 새벽에 포스팅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시간에 포스팅을 읽는 사람이 꽤 된다는 사실이다.



몇 달이 지나자 책스타그램의 진짜 문제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 객. 전. 도. 어느샌가부터 내가 책을 읽기 위해 인스타를 하는지, 인스타를 하기 위해 책을 읽는지 헷갈렸다. 게다가 생각이 떠오르는 글귀를 만나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며칠씩 업로드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역시 SNS는 반응이 빨랐다. 몇 안 되는 팔로워가 바로바로 빠져나갔다.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다지 신선하지 않은 생각까지 올리게 되었다. 심지어 산책도 독서의 일부 -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연결되므로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라고 우기며 뒷산 사진까지 올렸다. 그럴수록 책 읽는 시간은 줄어만 갔다.



얼마 전부터는 아무런 장치 없이 책을 읽는다. 지난 몇 개월 간의 야심 찬 시도를 감안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결말이다.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처음 그 자리에 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체득한 확신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다. 대체하기 어려운 에너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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