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방식은 백만스물하나다. 그만큼 다양하다는 이야기다. 책은 안 팔린다는데 책에 진심인 사람은 아직도 많은 거 같다. 세세한 방법까지 고민하고 연구하며 최적의 독서 방식을 찾고자 하니 말이다. 물론 나는 그중 선두 그룹 - 독서의 수준이 아닌, 효율을 위해 고민하는 수준으로는 -에 속한다. 원래 효율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데다가 퇴사하고 돈 벌 시간에 책을 읽고 앉아 있으려니 효율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문제는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여러 가지인 데다가 그마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개는 책을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덮고 다른 책을 펼친다는데 다른 아무개는 무조건 끝까지 읽는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훈수 두는 부장님 정도면 무시하면 그만인데 그러기에는 아무개들의 면모가 너무나도 대단하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 읽으라는 아무개는, 그동안 사 모은 책이 2만 권이 넘고 욕조에 들어가서 7~8시간씩 책을 읽는다는 영화평론가 이동진이고, 끝까지 읽으라는 아무개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고 경영하면서도 지난 수십 년간 시간을 정해 책을 읽어왔다는 빌 게이츠이다. 이러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책을 읽은 시간 못지않게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번 꼭지에서는 수많은 고민들 중 중요하면서도 헷갈리는 질문 딱 3가지만 이야기해 볼까 한다.
1. 종이책 vs. 전자책 vs. 오디오북
책에는 세 가지 타입이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 그리고 오디오북. 각각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우선 종이책이다. 종이책은 물성이 있다. 책 특유의 잉크 냄새와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 손가락에서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 이 모든 것이 경험이고 독서의 즐거움이다.
책의 모양새를 살피는 것도 재미있다. 세상에 똑같이 생긴 책은 없다. 크기, 두께, 디자인과 색상, 만듦새, 종이의 질, 글씨체, 글씨의 모양, 가름끈 - 책에 달려서 책갈피 역할을 하는 끈 - 의 유무 등등. 우리는 독서를 하는 내내 저마다의 특색이 있는 책들을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다. 아날로그만이 가진 매력이다. "정서에 관련된 모든 단어는 아날로그 영역에 있다 -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인용 -".
책의 물성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로망이 하나같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는 책장이라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요즘은 책값도 많이 올라 종이책을 사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전자책의 장단점은 마치 데칼코마니로 찍어 놓은 것처럼 종이책과 정반대이다. 싸고 휴대하기 좋지만 감성이 없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오래 읽으면 눈이 아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가장 아쉬운 점은 모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소유욕이 강한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큰 약점이다.
오디오북은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독서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아직 책의 종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점차 늘어가고 있으니 조만간 해결되리라 기대해 본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책을 빨리 읽는 고수들에게는 책을 읽어주는 속도가 답답할 수 있다 - 그렇다고 배속을 너무 높여서 들으면 마치 헬륨가스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므로 이쯤에서 패스!
나는 종이책을 가장 좋아한다. 책장이 주는 즐거움 때문이다. 책장은 내 독서를 기록해 주는 일종의 독서노트이다. 책을 고르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분류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 있어서는 독서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책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디오북도 자주 듣는다. 주로 문학을 읽는 - 듣는 - 데 활용한다.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책상에 앉아서 각 잡고 문학을 읽게 되지는 않기에, 오디오북은 문학의 끈을 놓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은 기계음이 아닌 전문 성우들이 더빙을 하는 경우가 많아 작품에 따라서는 마치 할아버지가 벽난로 앞에서 읽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사실 할아버지가 책을 읽어 주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런 느낌일 거라 추측해 본다 -.
2. 빨리 읽어야 하나?
난독증인가? '책 읽는 속도'로 구글링을 해보았다. 영어를 기준으로 할 때, 보통 책 읽는 속도가 대략 800 ~ 2,000 WPM이란다. 우리 기준으로 변환해 보니 대략 분당 1,000자인 듯했다. 보통사람이 1분에 1,000자를 읽는다고? 그럼 한두 시간이면 가벼운 에세이 한 권을 읽는다는 이야기인데. 음... 이어지는 내용은 더욱 믿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분당 2,000자 이상을 읽을 수 있고, 속독을 연습하면 분당 5,000자도 가능하단다. 독서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보통'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나는 독서 경력이 늘수록 점점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아마 아는 것이 생길수록 이것저것 생각해서인 듯하다. 책을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을 읽는 방법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메타적인 접근은 꽤 오랫동안 나의 독서를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렸다.
좀 찾아보니 책에서, 유튜브에서, 블로그에서 저마다 속독에 대한 비기들을 공개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팀 페리스도 그중 하나였다. 그의 이론은 꽤나 과학적이었다. 독서는 안구의 운동이기 때문에 주변시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의 양쪽 끝에 줄을 그어 양극단은 보지 않고 쭉쭉 읽어나가라는 거였다. 설득력은 있었지만 책에 줄 긋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귀찮기도 했다. 팀 패리스는 패스! 다음은 토니 부잔이었다. 맞다. 마인드맵을 창시한 그 토니 부잔이다. 알고 보니 속독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코칭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많았다. 하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빨리 읽는다고 해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하는 방법을 따라 해 보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가 건진 건 단 하나. 포인터다. 포인터를 사용하면 집중력이 올라가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책을 읽을 때 블랙윙 연필 끝에 익스텐더를 연결한 나만의 포인터를 사용하고 있다. 효과는 탁월하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레이저포인터를 따라가는 고양이의 눈으로 책을 읽고 있으니 말이다. 단, 아내가 무척 놀린다. 가지가지한다고.
속독을 연구하고 연습한 결과, 내용이 그다지 무겁지 않은 책은 한 시간에 100페이지 정도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찜찜했다. 내가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포인터만 왔다 갔다 하는 건지 의심이 되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후자 쪽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 시간에 30~40 페이지를 읽는 원래의 속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제는 난독증이 의심되는 내 독서 속도를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많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는 것이 내 독서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3. 여러 권을 한 번씩? vs. 한 권을 여러 번?
김연수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서 소설 365권과 비소설 365권을 선정한 뒤 일흔 살이 지나면 매일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비소설을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 내 노후대책이라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730권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랄까." -《마녀체력》에서 인용 -
훨씬 소박하기는 하지만 나도 얼마 전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인생 책 목록을 업데이트해 나가고 있다. 목표는 비문학 10권, 문학 10권, 총 20권. 비문학 부문은 나름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지만 문학은 아직 읽기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그런지 인생 책이라 할 만한 책을 10권 고르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고른 책들을 되도록 매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매년 읽을 만한 책만 내 인생책 목록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새로운 책을 읽는데 할애한다. 기존 목록에 있는 책을 밀어낼 굉장한 신인의 등장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 밖에도 고민거리는 많았다.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읽어야 하나? (설사 대충 읽더라도 나는 끝까지 읽는다), 한 분야를 파야 하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하나? (나는 다양한 분야를 돌아가면서 파는 편이다), 지질학과 같이 평생 써먹지 못할 거 같은 분야의 책도 읽어야 할까? (창의력은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쓸모'에서 나온다는 확신이 있기에 최대한 다양하게 읽고 있다) 등.
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는 '읽은 내용을 정리해야 할까?'였다. 마흔의 독서는 휘발성이 강했다. 책 읽는 당시에는 굉장한 영감을 얻은 거 같았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 남는 게 있겠지' 하고 넘기기에 초보의 의욕은 차고 넘쳤다. 화려한 엑셀 수식을 넣어 읽은 책들을 파일링해 보기도 하고, 문구 유튜버가 추천하는 트레블러스 노트 - 일본에서 인기 있는 노트로 매우 비싸다 -를 구매해 수기로 독서노트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만큼 내 독서 시간은 줄어들었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로 갔다. 단군 이래 성공한 적이 없다는 일명 '꿩 먹고 알 먹기' 전략이었다.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김에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그렇게 나는 #책스타그램에 도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