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독서를 꿈꾸다

by 날큐

마흔의 독서는 완벽해야 했다. '최고의 책'을 찾아 '최적의 시간'에 '최상의 방식'으로 읽는 것만이 퇴사를 결정한 나를 정당화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넘치는 자유에 황홀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마치 콘서트를 마친 가수처럼 허탈한 심정이었다. 기운이 빠지고 멍한 자리는 이내 엄청난 압박감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압박은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우선 무엇을 읽어야 할지부터 정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책을 펼치면 되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른의 독서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아니, 명분이 있어야 했다.



명분을 확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권위에 기대는 것이었다. 베스트셀러로 갔다. 처음에는 좋았다. 실패할 확률도 작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비슷한 책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변화는 온라인 서점이 제공하는 판매지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무렵 찾아왔다. 자꾸 인용되는 책이 있었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다. 찾아보니 행동경제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이었다. 호기심에 책을 샀다. 두꺼운 데다가 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어찌어찌 책을 다 읽었다. 역시는 역시, 고전은 고전이었다. 카너먼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다른 책들을 아류로 만들어 버리는 원본. 아, 이것이 진정한 권위구나! 믿음이 생기자 책에서 언급한 책들도 궁금해졌다. 이렇게 거점이 되는 책들이 하나하나 늘어갔고 어제 읽은 책이 오늘의 독서를 이끌게 되었다. 책이 소개하는 책들은 내 느릿느릿한 독서를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레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웃거리는 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흔에 궁금한 것이 생겼다. 때늦은 호기심은 주책맞게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책에서 언급된 인물이 궁금해서 그 사람에 대한 전기를 찾아 읽고, 작가의 다른 책들을 알고 싶어서 출판된 책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주제를 발견하면 관련 서적들을 독파하기도 했으며 반감이 드는 아이디어를 만나면 대척점에 있는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어느덧 나의 독서는 생각나는 대로 책장을 휘젓고 다니는 다섯 살 난 딸아이와 비슷해져 있었다. 물론 책에 그림은 그리지 않지만.


다음은 시간이었다. 최적의 시간을 찾고 싶었다. 독서는 머리로 하는 것이고 두뇌 활동에는 적합한 시간이 존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이토록 단순한 믿음이 그렇게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할 줄은.



우선 빌 게이츠를 따라 해 봤다. 독서광으로 유명한 그는 매일 자기 전에 한 시간씩 책을 읽는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저녁시간과 나는 맞지 않았다. 나의 의지력은 잠에서 깬 후 꾸준히 감소하며 자기 전에는 바닥을 드러냈고 두뇌도 이미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결정적으로 어린이집을 다녀온 내 딸이 내가 책을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은 워런 버핏이었다. 그는 빌 게이츠보다 더한 독서광으로 업무시간 내내 책을 읽는다고 했다. 커리어 초기에는 하루에 600페이지 이상을 읽었다고 하며 아흔이 넘은 지금도 만만치 않은 독서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종일 책을 읽어봤다. 이번에는 문제가 더 많았다. 만성이 되어 버린 목 디스크는 내가 오랜 시간 책을 읽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여기에 내 겸손한 집중력이 합세하며 한두 시간이 지나면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책을 읽는 척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게다가 마흔은 주변의 시선도 챙겨야 할 나이였다. 멘털이 좋은 편이지만 퇴사 후 해가 동그랗게 떠있는 대낮에 하루종일 책을 읽고 있을 강인한 마음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새벽독서를 시작하였다. 4시 반쯤 일어나서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책을 읽는 일정이었다. 효과적이었다. 저녁 9시쯤 딸을 재우며 같이 잠들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었다. 2시간 남짓한 시간도 집중하기에 적당했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했다. 새벽에는 친구와의 약속도, 맥주 한 잔의 유혹도, 가야 하는 경조사도 없었다. 게다가 맘만 먹으면 휴일에도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창 관심을 가지던 전기문과도 잘 어울리는 시간대였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새소리가 상쾌한 공기와 어우러지며 천재들의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최적의 시간을 찾은 듯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새벽독서를 해오며 꽤 많은 책들을 읽었다. 이것이 매일 하는 것의 힘일 것이다. 그렇게 느릿느릿 읽었는데도 그 많은 책들을 읽었다니. 하지만 요즘 또 시간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독서에 비해 글쓰기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던데 그렇다면 글쓰기야 말로 루틴에 적합한 활동이 아닌가? 아마 조만간 새벽시간을 글쓰기에 양보할 듯하다. 그래도 지난 세월이 있으니 독서 루틴은 어느 자리에서도 생존하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최고의 책'과 '최적의 시간'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어느덧 내 책장에는 아직 읽지 못한 좋은 책들이 빽빽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새벽 시간아니더라도 독서 루틴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시간은 힘이 있는 듯하다. 가끔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직 한 가지가 남았다. 바로 '최상의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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