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by 날큐

*** 본 글은 《장미의 이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아내가 말했다.

"움베르토 에코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많은 걸 포기할 수 있어."


의외였다. 아내는 좀처럼 있지도 않은 것들을 가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움베르토 에코는 시대의 지성이자 아내의 로망이었다. 그런 아내가 독서모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인 《장미의 이름》을 고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첫 책으로 고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초보인 나에 대한 배려였으리라.



책은 예뻤다. 크기는 적당했고 두툼한 두께와 잘 어울렸다. 뛰어난 종이의 질감은 세련된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며 "나 명품이야"를 외치고 있는 듯하였다. 사실 책은 아내의 것이었는데, 예쁜 디자인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한정판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외관과는 달리 나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은 사서 읽는다는 대쪽 같은 신념을 뒤로하고 빌려 읽었던 걸 보면 말이다. 책을 펴니 '역시나'였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은 독서 초보에게는 거추장스러웠다. 한 줄이면 설명할 것을 몇 페이지에 걸쳐, 그것도 난해한 용어들을 섞어가며 묘사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 심자 다운 발상이다 -. 게다가 내용은 어려웠고 두께도 상당했다. 난독증을 의심할 정도의 독서 능력을 가진 나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다른 멤버들에 대한 의무감으로 책은 어찌어찌 다 읽었으나, 이런 마음가짐으로 읽은 책이 도움이 될 리 없었다. 아마 왕년의 모범생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억지로 읽었던 《장미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혔다. 가끔 친구와의 대화나 글쓰기에서 잘난 척하는 용도 - 움베르토 에코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있어(?) 보이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 로만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사이 나의 독서는 변하고 있었다. 천재들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며 '전기문'이라는 독서 취향이 생겼고, 마흔이라는 나이에 호기심을 회복하며 '지식 릴레이'를 이어갔으며, 창의적인 사고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각에 관한 책들을 섭렵해 나가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성숙해지고 있었다. 다만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문학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나는 필요에 의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애당초 책을 선택하는 유일한 잣대는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 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소설은 가장 피해야 할 장르였다. 쓸모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새벽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데 일찍 일어나서 소설책을 펼 수 있는 용기가 이땐 없었다



나는 새벽에 두세 시간 독서를 하고 뒷산으로 산책을 간다. 가끔은 숲의 고요함 속에 나를 맡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디오북을 들으며 걷거나 달린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사용하는 오디오북 플랫폼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였다. 바로 《장미의 이름》이었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가운 동창을 만난 기분으로 바로 찜을 하고 발행일을 기다렸다 - 대작들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인지 미리 홍보를 하고 기다리게 한다 -. 드디어 발행일이 되었고 오디오북을 켰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아는 그 책이 아니었다. 달랐다. 우선 반발심만 일으켰던 장황한 묘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다방면에 걸친 지식에서 나오는 화려한 묘사 - 벌써 사용한 단어가 다르지 않은가 - 가 곳곳에서 훌륭한 스토리 라인과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이것이 아내가 말 한 움베르토 에코의 아우라가 아닌가 싶었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 달랐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단순 추리소설로만 보였던 책이 그동안 쌓은 알량한 지식들과 어우러지며 새롭게 보였다. 철학과 신학, 그리고 역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는 마흔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호르헤 수도사 - 극 중 최고 빌런 - 는 왜 그렇게 '웃음'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는지, 웃음은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윌리엄 수도사 - 주요 인물로 주인공 아드소의 스승 - 가 옹호했던 로저 베이컨의 경험주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한 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자극했다. 서양철학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버트런트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움베르토 에코의 - 정확히 말하면 편집자에 가깝다 -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세트 - 무지하게 비싸다 - 3권을 모두 사버리고 말았다.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도 보였다. 책은 희생자의 수를 미리 정해 놓는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에 따라 일곱 명을 차례차례 죽인다. 이런 과정에서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뿐만 아니다. 주요 인물 중 윌리엄 수도사는 특이하게 묘사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도사의 모습이 아니다. 의외성이 있다. 가끔은 수도사가 이래도 되나 싶은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쿨한 모습까지 보인다 - 개정판의 역자는 후기에서 007 시리즈와 유사하다고도 했다 -. 형적인 영웅의 면모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이 또 하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극 중 언급되는 인물들은 상당수가 실존인물이거나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주도면밀한 에코의 성향을 감안할 때 의도적인 듯하다. 덕분에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도 소설의 재미는 차고 넘친다. 자신의 특기 - 움베르토 에코는 사실 저명한 기호학자이다 - 를 살려 장서관의 비밀을 푸는 열쇠 - 사건 해결의 중요한 부분 - 에 기호학의 묘미를 더했고, 어려울 수 있는 철학적인 진리를 윌리엄과 호르헤의 논쟁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꼽는 《장미의 이름》의 가장 위대한 점은 창의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과정을 소설 속에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것이다. 그동안 생각에 관한 책들을 제법 읽어 왔지만 이 책만큼 창의력의 핵심에 접근한 책은 아직 보지 못했다. '창의적인 사고'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는 책 곳곳에서 창의성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었다. 윌리엄 수도사가 원장의 말 브루넬로에 대한 추리를 하는 대목에서는 기존의 지식이 새로운 관찰과 결합하며 창의적인 발견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수 있었고, 아두소 - 주인공이며 윌리엄의 제자 - 의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가 사건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는 광경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넘나들며 찾아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윌리엄 수도사가 아드소의 의도치 않은 이야기를 통해 아프리카의 끝 - 장서관 비밀의 공간 - 으로 가는 암호를 해독한 장면에서는 우연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등장인물들이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중간중간 이어지는 철학적인 대화 속에서,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 속에서 저자는 창의성에 관한 힌트를 제공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생각의 조각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한 강의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술 더 떠 "우리는 이야기 덕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어찌 보면 소설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실용서에서 한 두 단락이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위해 책 한 권 분량을 기꺼이 할애한다. 하지만 이야기에는 효율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 속 문장이 떠오른다.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모두 잊힌다. 잊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대상에 불멸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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