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타고난다고 했다. 나는 타고난 게 꽤 많은 편이지만 -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행복에 꽤나 도움이 된다 - 유독 덕질만은 타고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다른 친구들은 홍콩 배우들의 사진으로 책받침이나 필통을 만들어 - 당시 유행이었다 - 자신의 덕력을 자랑했지만, 나는 무심했다. 이런 성향은 꾸준히 이어져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단 한 번도 무언가를 비이성적으로 열망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없었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이러던 내가, 마흔 넘어서, 그것도 평소 잘 읽지도 않던 소설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덕후가 될 줄을.
고등학교 때 덕질 비스름한 경험을 한 적은 있었다. 《스키드 로우》라는 록밴드를 좋아했는데, 무언가 이 가수를 좋아한다는 표식을 갖고 싶었다. 그땐 옷을 사려면 상점에 직접 가야 했다 - 인터넷이 대학교 때 도입되었으니 온라인 거래는 훨씬 나중의 일이다 -. 그래서 당시 우범지대라는 인식이 있는, 그 무섭다는 이태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혼자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가장 덩치 크고 이태원에 가본 경험이 있는 친구를 하나 섭외하여 같이 갔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메탈티 - 록스타가 프린트된 티셔츠 - 를 엄청난 눈탱이를 맞고 두 장이나 구매하였다. 이것이 나의 덕질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면이다.
마흔의 덕질도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의 덕질일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팬심으로 비칠 정도였다. 그래도 신간을 꺼려하는 내가 - 초보는 검증된 것을 좋아한다 - 김초엽 작가의 책은 대부분 나오자마자 샀다. 《책과 우연들》이라는 책은 사고 보니 에세이라 당황하기도 -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 - 하였다. 그럼에도 팬심으로 작가의 첫 에세이를 다 읽고, 거기에 보태 책에서 언급된 책을 8권이나 구매하였다. 이 정도면 덕질 아닌가?
시작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이었다. 왜 읽게 - 아니 듣게 -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별 기대 없이 산책 중에 오디오북으로 듣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책이 받은 상이나 유명인의 추천사의 영향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과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남녀가 처음에는 덜컹거렸지만 이내 상대가 운명임을 깨닫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 같은, 그런 운명적인 대면이었다.
책은 일곱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딱히 서로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작가 특유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공통된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마치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닮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단편들 모두 훌륭하지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이하 '순례자')》를 특히 좋아한다. 아마 '김초엽'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작품이어서가 아닐까 한다.
인간배아 디자인 해커인 릴리 다우드나 - '순례자'의 주요 인물이자 주인공의 엄마 - 는 자신의 얼굴에 있는 '얼룩'을 가지고 태어날 딸의 DNA를 개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얼룩이 '이상함'으로 여겨지지 않는 마을을 만들어 얼룩이 '이상함'으로 여겨지는 시초지 - 지구 - 를 떠난다.
내가 '순례자'에 유별난 애착을 갖는 것은 개인적인 이유에서 일 수도 있다. 올해 다섯 살 된 내 딸은 느리다. 관계 형성이 서투른 탓에 발달이 더디다고 한다. 가끔은 '느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릴리 다우드나처럼 지구를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다른 이들로부터 불필요한 상처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내 능력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그런 환경으로 내모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늘 조급해진다.
김초엽 작가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공상과학소설 - 이하 'SF' - 전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난 두 번째 SF 소설은 '우빛속'과는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었다. 첫 장을 펴기 전까지는 좋았다. 일단 SF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저자는《마지막 기회라니?》로 일면식이 있는 데다가, 책은 전 세계적으로 1,400만 부나 팔렸다고 했다. 게다가 일론 머스크에게 우주의 꿈까지 심어줬다니. SF 초보에게 이보다 적합해 보일 수 없었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 깨달았다. 나는 이 책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괴이했다. 스토리는 참신함을 넘어 황당했고,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영국식 유머는 맥락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모든 것의 궁극의 해답'이라며 이 책을 놓지 못하게 했던 숫자 '42'에 대한 설명은 슬그머니 넘어갔다 - 온갖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 천 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이 신기할 다름이다. 초반에는 일론 머스크를 믿고 읽었고, 중반에는 지금까지 읽은 것이 아까워서 버텼으며, 후반에는 숫자 '42'가 궁금해서 마지막 장을 봤다.
그렇게 '히치하이커'가 잊힐 무렵이었다. 이사 후 책장을 정리하는데 책이 눈에 띄었다 - 두께나 디자인 모두 눈에 띄긴 한다 -. 책을 몇 장 뒤적이다가 역자의 후기를 보게 되었는데, 무언가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카이저 소제가 일어나며 조각조각 난 모든 스토리가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듯한 충격이었다. 다시 만난 '히치하이커'는 달랐다. 더글라스 애덤스가 묘사한, '시답지 않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아 제멋대로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 있었다. 거창한 걸 꿈꾸지만 흙바닥에 있는 개미를 찾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나의 진짜 인생과 말이다. 책의 진가를 알아봤다는 뿌듯함에, 나의 독서가 이만큼이나 성장했나 하는 기특함에 '히치하이커'는 어느새 내 책장 제일 윗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더 이상 숫자 '42'의 의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직 공상과학소설 덕후라 하기는 어렵다. 세 번 간 가게를 단골이라 우기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무리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거 같다. 이미 우주에 대한,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싹이 자랄 만큼 자라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말이다. 앞으로 내가 만날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키고 성장시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