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생은 서운하다.
한 해 차이로 격동의 70년대라는 올드한 이미지가 씌워진다. 두 해 차이로 MZ세대에서도 소외된다. 나부터는 X세대란다. 그뿐이랴. 뭘 좀 해보려고 하면, "새롭게 도전하기에는 늦었다. 위험을 감수할 나이가 아니다. 그동안 해온 게 아깝지 않냐"는 3종 세트에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 이 정도는 격동의 70년대 답게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제도적 장벽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조금 과장하면 합법적으로 앞 길이 막혀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창업경진대회는 나이 제한에 걸려 지원조차 하지 못하고, 창업지원금도 해당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몇 해 전 "인문학이 교육의 근간이다."라는 모토로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이들을 양성하겠다던 곳에서도 지원 요강에 '만 35세 이하만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가 또렷이 새겨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버린 걸까?
늙은 젊은이들의 도전을 석연치 않게 보는 시선에는 나름 날카로움이 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노력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일에 미쳐, 성과에 미쳐, 아니면 꿈에 미쳐 잠도 안 자고 일한다. 잠을 충분히 자고 휴식을 위한 시간이 있어야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알지만, 이 시기에는 우선 한다. 여기서 젊음이 한 몫한다. 마흔 살의 체력은 하루 밤을 새우기에도 벅차다. 이틀 밤을 새우면 삼 일을 쉬어야 회복이 된다. 속도 제한이 있는 차선에서는 세단으로도 충분하지만 경주용 트랙에서는 스포츠카와 같은 20대의 폭발력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서글프지만 인정!
체력은 타고났다고 치자.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나이가 들면서 무거워지는 건 몸무게만이 아니다. 밤 새 야근을 하고도 아침에 등산을 가는 축복받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가족을 생각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지만, 당장 내 눈앞에서 내 아내, 내 딸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사고 싶은 것을 못 사며, 배우고 싶은 것을 못 배우게 되는 것은 현실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40대다.
사회의 관점에서도 불리하다. 40대에 도전해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되겠다는 패기를 보이기는 어렵다. 열정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큰 꿈을 이루기에는 남아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아서일 것이다. 노년기에 부자가 되기 위해서 커리어의 황금기(혹은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를 포기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드물다. 엠제이 드마코(부의 추월차선의 저자)의 말처럼 '휠체어 탄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면 된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호흡이 긴 도전은 피하게 된다. 제2의 쿠팡을 꿈꾸기보다는 치킨 프랜차이즈 매각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전 회사 1층에는 특이한 카페가 있었다. 중공업 회사에 어울리지 않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콘셉트로 꾸며진 야외 테이블을 가진 카페였는데 한쪽 구석에는 풍력터빈 모형 몇 기가 밤낮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신사업으로 풍력에 발을 담갔으니 풍차는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왜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장님의 특이한 취향이었으리라. 아무튼, 퇴사를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내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풍차 날개가 몇 바퀴 도는 동안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대담한 통솔자(ENTJ)라서 그랬을까? 회사가 싫었던 것도 아니다. 재무 업무가 맞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회사 내에서 앞날이 어두웠던 것도 아니다. 그저 새로움에 목말랐던 것 같다. 결정된 것은 아내(아내도 몇 달 전에 퇴사한 상황이었다.)와 함께 무언가 도전을 할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그 여정을 5년째 이어나가고 있다. 아직 끝이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여정을 부담스럽지 않은 어조로 풀어 보려고 한다. 독자 여러분들이 "우리 또래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각 꼭지의 질문을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해보는 것만으로도 '서른아홉, 나에게 묻다.' 연재의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