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사업가의 시작

나만의 '경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by 날큐

키르케고르는 말했다고 한다. "도전하는 것은 잠깐 발판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늦깎이 도전자들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발판에서 발을 뗄 수도 없다. 발판은 나 혼자 밟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아내, 내 딸도 같이 밟고 있다. 천성이 경주마이지만, 이번만큼은 한 발 양보하여 N잡러의 삶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배달의 민족도 토이 프로젝트로 시작했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니 특기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럴듯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적합한 사이드잡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퇴근 후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한 채, 빡빡한 하루에 지친 자신을 다독이며 책을 읽는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회사일이 떠오른다. 다시 집중하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한 번 저어 본다. 거실에서는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에게까지 미안한 마음이 들 새도 없이 눈꺼풀은 덮여 온다.



이렇듯 소심한 도전을 간신히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을 용기와 열정이 없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이들이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면.



애덤 그랜트의 저서 '오리지널스'에 따르면 무모하고 용감한 도전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많은 창업가들이 실제로는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학업을 계속하고자 초창기 구글을 100만 불이 안 되는 금액에 매각하려 했다. 애플 컴퓨터를 발명한 워즈니악은 애플을 창업한 이후에도 다니던 직장인 휴렛팩커드에서 2년이나 더 일했다. 와비파커 창업자들도 회사가 잘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각자 일 할 직장을 준비해 놨다고 한다.



"나처럼 대학을 중퇴하지 말라." 하버드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학위 없이 성공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공부를 마치는 편이 자퇴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임금과 좋은 직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 자신도 소프트웨어 판매를 시작하고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중퇴가 아닌 휴학이었다. 사업이 안되면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20대의 빌 게이츠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후에야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우리가 모든 걸 걸고 도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내 생애 마지막 편을 볼 수 있을까 싶은 무협 만화, 열혈강호는 1994년 만화잡지 영챔프의 창간과 함께 연재된 후로 30년 가까이 발간되고 있다. 수십 년간의 인기 비결에는 웅장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짜인 스토리라인도 한몫하지만, 주인공 한비광의 성장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비광은 엉뚱하면서도 시크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다. 정파와 사파가 나오는 무협 만화의 주인공이 싸움과 권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아름다운 담화린과 어떻게 하면 엮길 수 있을까만 궁리한다. 하지만, 싸움에 목숨 거는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빠르게 성장한다. 그것도 최고수로. 의도 없는 성장은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천재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성장 스토리에는 우리 늦깎이 예비 사업가들이 배워야 할 점이 있는 듯하다.



한비광에게는 확실한 특기가 있다. 바로 경공이다. 본래 경공의 의미는 심오할지 모르겠지만, 열혈강호에서는 주로 도망치는 기술로 묘사된다. 그는 애송이 시절부터 도망치는 것만큼은 무림 제일이다. 어떠한 고수에게서도,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고수들이 득실대는 무림에서 살아남았다. 도망치는데 몇 번 성공하다 보니 자신감도 붙었다. 더욱 과감해진다. 산속에 들어가 오랜 기간 무공을 마스터한 후에야 실전에 선보이는 것이 무림의 국룰이거늘. 한비광은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방금 전 상대가 쓴 기술도 바로 해본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빠르게 배운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이다. '린스타트업'과 닮아 있다. 저자 에릭 리스가 칭찬할 만한 실행력이다. 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자 경공을 공격할 때도 활용한다. 같은 무술도 한비광이 하면 위력이 배가 된다. 경공이라는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다. 그렇게 한비광은 경공 덕에 무림 최고수가 되었다.



한비광의 경공은 사업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창업자의 경쟁력 있는 특기는 사업이 성장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준다. 사업이 흔들릴 때마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해 준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도 초창기 회사가 어려울 때 본업인 회계사 일을 하며 자금을 확보했다고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창업자의 심리적 안정감이 중요한데,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창업자의 멘털을 단단하게 해 준다. 단단한 마음은 강한 실행력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렇게 사업을 일으킨다.



김미경 씨의 직함은 여러 개다. 적지 않은 수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작가이자 강력한 팬덤을 가진 150만 유튜버, 직원수만 60여 명인 온라인 교육기업인 MKYU의 대표, 그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일을 벌이고 있는 현재 진행형 사업가이다. 화려한 현재의 모습과 달리 출발은 그리 대단치 않았다. 음대를 졸업한 주부가 자기 계발 강의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화려한 스펙은 없었지만 그녀의 강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힘을 얻었다. 흡입력 있는 강의가 김미경 씨를 스타 강사로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가르친 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였고 성공과 실패들이 모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본업인 강의는 새로운 사업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N잡러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도무지 비전을 찾을 수 없지만, 모든 걸 걸고 도전하기는 두려운, 아버지 세대가 '열정이 없다'라고 비판하는, 요즘 애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열정이 없지 않다. 열정의 모양이 다를 뿐이다. 노력의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 새로운 시도가 사업으로 발전하여 원하는 부를 거머쥐든. 경쟁력을 갖춰 하나의 직업을 더 갖게 되든. 취미 수준에 머물든. 적어도 나 자신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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