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돼야 할까?

다시 폴리매스의 시대로.

by 날큐

초등학교 때일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만화 속 캐릭터가 있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아케치 켄고다. 아름다운 은발에 날카로운 눈매,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세련된 안경(지금 보면 약간 촌스럽기는 하다.)을 쓴, 한눈에 반할 만한 외모의 소유자다. 게다가 고시를 합격하고 20대에 경찰에서는 높은 지위라고 하는 경정에까지 오른 엘리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동경한 것은 그의 뛰어난 외모나 엘리트적인 면모가 아니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다재다능함이었다.



아케치는 3살 때 저명한 음대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지도받기 시작했고(내 딸은 4살인데 아직 말하는 것도 서툴다.) 고등학교 때는 처음 보는 곡을 초견으로 연주하여 명문 음대생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체스 대회에 나가서는 상대가 컴퓨터로 치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이겨버린다. 뿐만 아니다. 펜싱, 승마, 와인 감별 등 못하는 게 없다. 심지어 아주 잘한다. 다만, 추리 능력에 있어서만 김전일에 약간 못 미칠 뿐이다.



그 후로도 다재다능함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칠 줄을 모른다. 전람회에서는 메인 보컬인 김동률보다는 음악을 하다가 비즈니스 커리어에서도 성공한 서동욱을 좋아했다. 레전드 가수인 신승훈보다는 성공한 금융인이면서도 음악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김광진을 동경했다. 본업이 경영자인지 기타리스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기타 실력을 가졌다는 대기업 CEO의 기사를 읽고 감탄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단순히 있어 보이는(?) 그들을 동경했지만 와카스 아메드가 쓴 '폴리매스'를 읽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폴리매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메드에 의하면 '폴리매스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역사를 이끌어 온 수많은 폴리매스의 사례를 소개하며, 인간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우물만 파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통념을 깨야 한다고 한다고 주장한다. 폴리매스가 되기 위해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누구나 원하면 폴리매스가 될 수 있는가? 폴리매스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비해 효율적인가? 성장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학습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일본의 기인, 호미에 다카후미는 저서 '다동력'에서 '직함을 세 개 가지면 여러분의 가치는 1만 배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누구나 '100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10,000명 중 한 명'(=100명 중 한 명 X 100명 중 한 명)의 인재, 세 번째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100만 명 중 한 명'(=100명 중 한 명 X 100명 중 한 명 X 100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사업가, 베스트셀러 작가, 벤처 투자자, 매거진 발행자, 컨설턴트,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 프로그래머, 영화 프로듀서, 뮤지컬 배우 등 수십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다카후미의 주장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한다고 1%(100명 중 한 명)의 인재가 되기는 어렵다. 사람마다 뛰어난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씩 3년 공부했다고 모두가 수능시험에서 상위 1%에 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1만 시간 동안 마케팅 분야에서 '100명 중 1명'이 되었다고 하자. 다른 분야에 집중하는 1만 시간 동안에도 마케팅 분야에서 '100명 중 1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는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능력을 체화할 수 있다는 가정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학습과 성장의 관점에서 다카후미의 접근법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최정상에 서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야구를 시작한 수 만 명 중 류현진은 한 명이다. 예능인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 중 유재석은 한 명이며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지망생들 중 BTS는 하나이다. 그만큼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타고난 부분이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10명 중 하나는 누구나 될 수 있다. 10명 중 1명이 될 수 있는 분야가 세 가지만 있어도 상위 0.1% 아닌가? 3만 시간을 투자하면 상위 0.1%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루 10시간씩 투자하면 불과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상위 0.1% 인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엑셀처럼 사용하는 시대에 인간이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이따금씩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 사이에서도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하는 등, 의견이 갈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공지능의 파급력은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프로세스와 닮은 딥러닝까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모든 인간은 좋든 싫든 간에 인공지능을 실무자로 둔 리더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법률자문이 필요하면 인변(인공지능 변호사)을 불러 해결하면 된다. 법무법인에서 며칠 걸리던 검토의견이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모니터에 출력된다. 우리 인변은 유능해서 재무분석, 시장분석, 세무처리 등도 모두 가능하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하더라도 인변을 상대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점과 점을 연결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 인변은 아직 창의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혁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조지프 슘페터가 지적한 대로 창조적 파괴는 항상 새로운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잡스 또한, "창조라는 것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시대는 크로스오버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의 시대에서 폴리매스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연못에 떠 있는 수련은 매일 전날 덮었던 수면의 두 배 면적을 덮는다고 한다. 30일 후에는 연못의 수면 전체를 덮을 수 있는데, 29일 동안 덮었던 수면 면적을 30일째 되는 마지막 하루 동안 덮게 되는 것이다. 처음 며칠 동안, 수련이 덮은 수면의 면적은 미미해서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기는 어디에나 있다. 결과는 지루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단계를 견뎌내지 못하고 다른 곳을 기웃거린다면 성장을 경험할 수 없다. 계속되는 시도는 실패한 경험을 반복하게 할 뿐이다. 자신이 다재다능하다고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가짜 폴리매스'가 되기 쉽다. 추리 능력이 S급인 김전일이 될지, 여러 가지 A급 능력을 가진 아케치가 될지는 연못의 수면을 덮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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