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에이스였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입사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일 잘하는 선배들이 부서를 떠났다. 당시 과장님은 사내 유학생으로 선정되어 영국으로 떠났고 대리님은 회사가 풍력사업에 진출하며 설립한 미국 자회사로 파견을 갔다. 덕분에 고생은 좀 했지만 빠르게 핵심 업무를 꿰찰 수 있었다. 부서의 주요 업무는 크게 두 가지였다.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분석하여 경영진께 알리고 그들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최고경영자나 대주주께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유능한 사원이 되는 데는 이성과 논리, 최소한의 글쓰기 능력, 그리고 약간의 눈치면 충분했다. 운 좋게도 이 역할은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했다.
이 시절의 나는 막부시대의 닌자와 같았다. 주어진 미션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혼자서도 충분했다. 하지만 창업을 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젠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서는 장수가 되었다. 닌자와 장수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장수의 역할은 일기토에서 적장의 목을 베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젠 개인기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을 하게 해야 한다.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하게 하고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리더에게는 모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어야 하며 일처리가 신속하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심지어 여러 명이 같이 일하는데도 혼자서 일할 때보다 더 외롭다.
<논어등반학교>의 네이밍은 논어가 만만치 않은 책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려준다. 이름에 걸맞게 수업은 일 년 가까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암벽 등반하듯이 온 힘을 다해 공부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이한우 학교장의 이력은 특이하다. 서양철학을 오랫동안 공부하였지만 기자로 일한다. 문화부장이란 자리를 뒤로 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논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논어에 대한 해석 또한 학교장의 이력만큼이나 색다르다.(적어도 내 수준에서는 그렇다.) 제왕학의 관점에서 논어를 바라본다. 자연히 논어 전반에는 지인(知人)이라는 기저가 깔려 있다. 왕의 입장에서는 사람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씀은 사(私)의 영역보다는 공(公)의 영역에 적용된다. 공의 영역의 주제는 물론 일(事)이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지인해서 뭐하겠는가?
공자가 인재를 평가하는 잣대는 크게 '하고자 하는 마음'(문, 文)과 '타고난 자질'(질, 質)이다. 저자는 논어의 상당 부분을 등장인물의 말이나 행동을 근거로 공자가 그 사람 평가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파악하는 프로세스를 엿볼 수 있다. 재아의 사례를 보면, 낮잠을 자다가 걸려도, 가르침(삼년상에 대한 부분)에 대놓고 반기를 들어도 공자는 나무라지 않는다. 재아가 나간 후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라고 할 뿐이다. 이미 공자는 재아를 가르쳐도 변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도 등장한다. 공야장편에 보면 제자들을 평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제자 자로는 천승지국**에서 군정을 맡길 만하다고 하고 제자 염유는 지방읍에서 실무책임자를 할만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제자 공서적은 한 나라의 외교업무를 맡길 수 있다고 하였다. 제자들의 성향뿐만 아니라 그릇까지 감안한 구체적인 평가이다.
공자와 같은 세밀한 평가는 어렵더라도 사람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실무형이다. 실무형의 처음은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정확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명확한 지시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이해력과 꼼꼼함이 능력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간혹 지나치게 창의력을 발휘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대부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지시받은 일을 하는데 머물지만 간혹 이 일이 왜 필요할까? 상사는 왜 이 일을 지시했을까? 등의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이는 한 단계 올라섰다는 신호이다. 이 수준에 이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하게 된다. 가끔 판단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초보 때와는 달리 조직 전체의 미션을 생각한다. 이쯤 되면 실무형 인재로 남을 건지, 관리자가 될 건지 선택을 해야 한다. 실무형의 끝은 전문가이다. 소수만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은 경력자에 머물 뿐이다.
다음은 관리형이다. 이들은 대기만성형이다. 아니, 대기만성형이 되어야 한다. 부모님 찬스를 쓰지 않는 한 관리자로 시작하는 직장은 드물기 때문이다. 인생 초반은 힘들 수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다음날 시험과목을 희생하면서도 팀 프로젝트를 챙긴다.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정작 학점은 뛰어나지 않을 수 있다. 사회 초년생 때는 실무형 인재에게 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을 참아내고 팀을 이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이들은 달라진다. 팀원의 자질과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적합한 업무를 할당하며 타고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 최고의 위치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위아래로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멘털도 관리형 인재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지막은 아이디어형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가 많다. 잠이 많은 경우도 꽤 있다. 커리어 초기에는 놀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 쉬우며 성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관찰자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일이 본업이다. 관리형의 자질을 겸비한 경우, 최고의 위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실무 능력이 있다면 뛰어난 전문가로 발전할 수도 있다. 위치가 올라갈수록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유형이지만 적합한 조력자가 필요하기도 한 부류이다.
일잘잘(일은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이라고 하지만 일은 다양하고 사람도 다양하다. 어느 자리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포지션에서는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애초에 질문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는 그 누구도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특정 위치에서 일을 잘할 사람은 누구인가?"로 질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좀 더 깊게 생각해보는 것은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이들에게는 지인(知人)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며,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는 채워야 하는 부분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 논어에서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자질도 없는 부류를 고(固)라고 한다.
**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