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학습법 (上)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by 날큐

"학원만 있으면 일등 할 수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하위권을 맴돌던 동기 녀석이 했던 말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상위권이었는데, 대학에 와서는 도무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정해진 교재와 시험 범위라도 있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의 공부는 커리큘럼조차 없지 않은가. "앞으로 모든 개인은 전문적인 학생(professional student)이 돼서 평생 공부해야 한다. 학생이 직업이 된 세상에 살아야 된다."라고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말했다. 배우는 능력이 곧 경쟁력인 시대에 살 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MZ세대가 부러워하는 58년 개띠 시절에는 KS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사람을 KS 인증 제도에 빗대어 한 말인 거 같다. 이 시절에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라는 것이 있었다. 정답이 있었기에 수학 문제 풀듯이 정해진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복잡해졌다. 이젠 같은 길을 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차별화를 해야 한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떠한 자격(증)도 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이제 최고의 인재들은 고시촌이 아니라 10평 남짓한 스타트업 사무실로 향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식의 유통기한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직업이 학생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독학하면 독서가 먼저 떠오른다. 로켓에 대해 어디서 공부했냐는 질문에 일론 머스크는 책에서 배웠다고 했다. 뭐 일론 머스크야 천재니까 그렇다 치자. 의대 출신이면서도 컴퓨터 백신을 개발하여 전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한 안철수 씨(정치인 안철수는 잠시 잊기로 하자.) "테니스도 처음에는 책으로 배웠다."라고 했다. 테니스를 책으로 배운다고? 그렇다. 성공한 사람들의 시작에는 항상 책이 있다. 워런 버핏은 커리어 초기에 매일 600페이지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하며 빌 게이츠는 매일 잠들기 전 한 시간 이상의 독서를 한다고 한다. "독서가들이 모두 리더는 아니지만, 모든 리더들은 분명 독서가다"라고 한 해리 트루먼(미국 전 대통령)의 말은 사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책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성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을까? 구글에 검색어를 넣으면 1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수천만 개의 결과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지금, 책은 어떻게 지성의 중심에 설 수 있었을까? 책은 다가올 미래에도 효율적인 학습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책에는 깊이가 있다. 어렵고 심오하다는 뜻이 아니다. 책의 깊이는 완결함에서 나온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완성본이다. 지식을 전달하든, 의견을 피력하든,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든, 책에는 주제를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작가는 단편적인 지식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좋은 작가는 결국 잘 짜인 구조로 독자를 설득한다. 이야기의 각 부분에는 작가의 의도에 맞는 역할이 부여된다. 층위도 생기게 된다.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다. 우리가 소설이 아닌 책에서도 기분 좋은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총균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처럼 빡빡한 논거들을 선봉에 세울 수도 있고,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보여준 대로 창의적인 생각을 매력적으로 풀어내며 독자를 지적으로 감동시킬 수도 있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부담스럽지 않지만 강한 문장을 쓸 수 있었다. 방법이야 어떻든,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완결한 지식 세트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책의 완결함이야 말로 시의성 높은 양질의 온라인 콘텐츠들을 독학의 부교재에 머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였다."라고. 이렇게까지 말한 것을 보면, 헤밍웨이 같은 대작가에게도 책을 쓴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나 보다. 수십 년의 숙성을 거쳐서 맛 좋은 위스키가 탄생하듯, 작가는 지난한 퇴고의 과정을 거쳐 지식과 지혜가 농축된 책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그저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지식의 액기스를 목으로 넘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브런치 초기에는 위클리 매거진이라는 연재 방식이 있었다. 브런치팀에서 선정한 작가들이 매주 정해진 요일에 글을 올리는 식이었던 거 같다. 아내도 위클리 매거진 작가로 선정되어 출간까지 하게 되었다. 글 쓰는 것이 직업이었던 아내에게도 책을 낸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물론 본업을 이어나가며 출간을 준비했기에 더 힘들기도 했다.) 책을 쓰는 아내의 모습은 마치 값비싼 양피지에 책의 내용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넣는 중세 시대 수도사와 같았다. 일을 대할 때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라(임사이구, 臨事而懼)고 하던 공자의 기준으로는 세상의 모든 작가는 군자일지도 모른다.



선물 받은 커피잔이 산지에 따라 가격이 몇 배 차이 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같은 브랜드라도 '메이드 인 잉글랜드'와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프리미엄일 것이다. 지식의 세계에서는 책이 원본인 경우가 많다. 강의나 영상 등 독학의 다른 교재들은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편리하게 가공된 지식이 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원조는 원조다.







이제 교재는 정해졌다. 우리는 완결하고, 지식과 지혜가 농축되어 있으며, 지식의 원본인 책으로 공부하면 된다. 그렇다면 책으로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책에서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할까? 인생의 커리큘럼은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어른의 공부는 다르다. 일회성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학습법(下)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독서가 지적 허영을 만족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를 성장시키고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배운다는 것에 정도(正道)는 없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독서가 전부라는 사람도 있고, 책상머리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고, 혁신이 중요하며, 분야를 넘나드는 창의성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것들을 스스로 배워야 하는 시대이인 것이다. 따라서 독학의 기술은 중요하다. 그때 그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줄 학원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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