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를 하나 풀어보자. 이것은 자기계발 분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것은 성공한 사람들 상당수가 성공의 이유로 꼽는다. 이것은 불확실한 세상에 작은 확실함을 주며 우리의 멘털을 단단하게 해 준다. 이것은 단기간에는 변화를 느끼기 어렵지만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한 나를 느끼게 해 준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충분한 시간 동안 반복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 루틴이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있다. 불확실해지고 있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변동성은 리스크이다. 리스크의 다른 말은 위험이다. 생존 본능일까? 인간은 애초에 위험을 싫어한다. 얼마나 싫어하는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익마저 포기할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로 복잡한 세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피곤하게 한다. 격동의 70년대생인 나에게도 가끔은 버겁게 느껴진다.(억울하게도 70년대 끝자락에 태어났다.)
변수로 가득한 세상에 누구나 상수 하나쯤은 필요하다. 몇 달 동안 나를 갈아 넣다시피 한 기획안이 담당 임원의 말 한마디로 무산된 직장인에게, 야심 차게 개업한 카페에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다는 것을 문득 발견한 자영업자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몇 년째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업가에게, 루틴은 '그래도 오늘 이거라도 했지.'라는 따뜻한 위안을 줄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사소함이 불안한 내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다. 상수가 가진 힘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복잡하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말한다. '당신과 나의 머리에 든 하드웨어는 유난히 정교하다. 이 말은 곧 우리에게 유난히 심오한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고도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친구가 천 명이나 있는데도 외로움에 시달리고, 눈부시게 환한 거리를 거닐면서도 천지가 흐릿해 보인다고 토로한다.' 이토록 복잡한 우리가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단순함의 가치는 이러한 원초적인 복잡함에서 나온다. 세계의 부호인 주커버그가 돈이 없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루틴은 생각할 필요가 없게 해 준다. 그냥 하면 된다. 우리에게 단순함을 줄 수 있다.
우리는 배우고 생각하면서 성장한다. 배움이라는 씨앗은 생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배움이 없는 성장은 없고, 생각이 없는 성장도 없다. 공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루틴은 배움에 특화되어 있다. 배움의 성패는 꾸준함에 있기 때문이다. 배움은 찰나에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시간표 속에 짜넣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생각은 배움을 통해 얻은 지식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연결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한다. 통제하기 어렵다. 창의적인 생각은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넘나들며 찾아온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한 몰입의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
루틴을 신봉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 아침 루틴의 달콤함을 경험해서일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퇴사 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게 되자, 자연스레 루틴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팀 페리스가 쓴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오는 루틴 모두를 시간표에 집어넣을 태세였다. 지금도 그 당시 엑셀로 만든 시간표를 보면 숨이 턱 막힌다. 퇴사의 불안함이 초인적인 의지를 이끌어냈는지, 처음에는 제법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루틴의 목표는 습관이다. 습관화되지 못한 루틴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의식하지 않고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나, 이게 만만치 않다. 게다가 루틴이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작아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 하루 종일 무의식의 세계에서 습관이 이끄는 대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로 지나친 루틴은 습관이 되기 어렵다.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결국, 과도한 루틴은 몰입을 방해하게 된다. 집중하며 생각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촘촘하게 짜인 루틴은 우리에게 덩어리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몇 시간 확보하더라도 앞뒤로 버티고 있는 루틴이 몰입으로 들어가는 문을 굳게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만난 건, 첫사랑과 헤어졌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처음 큰 실패를 겪고,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과몰입하여 시련의 슬픔을 증폭시키는데 그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 냉정해서도 안되고 열정만 가득해서도 지속하기 어렵다. 가운데 적정한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사랑을 배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랑만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이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자신만의 지점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늘어나고 있는 시행착오가 나만의 적당한 루틴과 몰입의 시간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