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얼마나 자야 할까?

적게 자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집단 환상

by 날큐

뒤쳐질 수 없다. 우선 '성공한 사람들의 기상시간'으로 구글링을 한다. 스타벅스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는 4시 반, 트위터의 창업자인 잭 도시는 5시, 애플의 CEO인 팀 쿡은 3시 45분,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6시. 가장 빨리 일어나는 팀 쿡으로 정한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보다 늦게 일어나서 어찌 성공한단 말인가. 3시 반에 일어났다. 팀 쿡보다 15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마음만은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참고해 미리 계획해 두었던 나만의 비기, 아침 루틴을 시작한다. 잠자리를 정돈하려고 하니 아내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아차! 생각지 못한 일이다. 일단 패스. 세수를 하고 명상을 하기 시작한다. 별점이 높은 명상 앱을 미리 깔아 놓은 자신을 뿌듯해하며 명상에 들어간다. 끝나고 나니 명상을 한 건지 졸은 건지 헷갈린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일단 시작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다. 다음은 가벼운 운동이다. 팔 굽혀 펴기를 한다. 하고 나니 왠지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새벽에 몸을 움직이면 몸 안의 세포들도 깨어난다는 말이 맞았나 보다. 원래 차를 마셔야 하지만 커피는 포기할 수 없다. 그라인더(커피 분쇄기)의 소음으로 가족들이 깰까 두려워 어젯밤에 미리 갈아 놓은 케냐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향긋하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이다. 아침 일기를 쓴다. 감사한 5가지를 찾아 노트에 적는다. 루틴을 끝냈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뿌듯하다.



문득, 어제 퇴근길에 읽은 야마구치 슈의 글이 떠오른다. 세계의 리더들은 직감을 단련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한단다. 서양철학으로 간다. '타자와의 관계', '형식과 질료', '인식론적 관점'. 우리나라 말이 아닌 거 같다. 아침부터 기분을 망칠 수 없다. 재빠르게 책을 덮고 동양철학으로 갈아탄다. 이제 좀 들어 본 구절들이 나온다. '역시 나는 한국인인가 보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 준비를 한다.



오전은 이상하리 만큼 정신이 맑았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새로운 발견은 오래가지 못한다. 점심을 먹자마자,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빠르게 쌓이고 있는 것을 느낀다. 커피를 한 잔 해보지만 소용없다. 설상가상으로 부장님께서 부르신다. 전직이 빨간펜 선생님인지, 내가 작성한 보고서가 빨간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맞은편 자리에 앉자 프리스타일 랩 배틀에라도 나간 듯 속사포 비난이 쏟아진다. 퇴근 후 부장님 얼굴을 생각하며 술잔을 들이켠다. 동기들과 부장님 욕을 한 바탕하니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다음 날이다. 일어나 보니 이미 5시 반이다. 충분히 이른 시간이지만 3시 45분 기상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다시 잔다. 열정과 의지가 부족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자괴감이 든다. 실패 경험으로 시작한 하루가 생산적 일리 없다.







우리는 잠을 줄이는 희생을 마치 성공한 사람만의 훈장처럼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적게 자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집단 환상'은 새벽 기상 열풍과 함께 빠르게 퍼져 나갔다. 새벽에 일어나서 성공했다는 간증(?)들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 수면전문의인 쓰보다 사토루가 쓴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라는 책은 수면을 줄이는 비기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글로벌 유력지에서도 앞다투어 새벽시간이 하루 중 가장 생산적인 높은 시간이라며 성공한 사람들의 기상시간을 소개하는 기사를 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야근과 회식이 당연 시 되는 문화였기 때문에 새벽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곧 잠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하루 4시간을 자고도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점점 목표와 멀어졌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먹는 것을 신경 써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적게 자고도 생산적으로 살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바꾼 건 매슈 워커가 쓴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라는 책이다.



놀라운 돌파구!
과학자들이 수명을 늘리는 혁신적인 새로운 요법을 발견했다. 기억력도 강화하고 창의력도 더 높여 준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한다. 몸매를 더 날씬하게 유지하고 식욕도 줄여 준다. 암과 치매도 예방한다. 감기와 독감도 막아 준다. 심장 마비와 뇌졸증. 당뇨병 위험도 줄여 준다. 행복한 기분은 높이고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은 줄여 준다. 관심이 가는지?



매슈 워커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과장인 양 들릴지 모르지만, 이 가상의 광고에 부정확한 내용은 없다. 이것이 신약 광고라면, 못 믿겠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설득된 사람들은 소량이라도 구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지불할 것이다. (중략) 물론 이 광고는 어떤 기적의 새로운 약물이나 만병통치약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밤에 잠을 푹 잤을 때의 검증된 혜택들을 말한 것이다. 처방받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까? 한 푼도 안 든다. 공짜다. 그런데 종종 그렇듯이, 우리는 이 지극히 자연적인 치료제를 온전히 다 투여받으라는 밤의 초청을 거부하곤 한다. 그리하여 끔찍한 결과가 빚어진다."


세계적인 신경학자답게 책은 전문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을 실험으로 검증한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위의 가상광고가 매슈 워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부이다. 실제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슈 워커는 하루 8시간 수면을 꼭 지킨다고 한다. 이른 기상시간에만 집중해서 그렇지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팀 쿡은 3시 45분에 일어나지만 9시에 잠든다. 제프 베조스는 잠을 우선순위에 놓고 10시에 잠들어 6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12시쯤 잠들어 7시에 일어나고 세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1시에 잠들어 7시까지 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바쁜 사람들도 6~8시간을 자고 있는데 우리는 왜 잠을 줄여야 성공한다고 믿고 있을까? 대부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들이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잠을 줄여서라도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들이 우리 대부분 보다 뛰어날 수는 있지만 잠을 줄여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매슈 워커의 주장이 맞다면 말이다.



하루 8시간 잠을 잔 사람은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100이라고 하자. 깨어 있는 16시간 동안 8시간 잔 사람의 생산성은 1,600이 될 것이다. 하루 4시간 잠을 잔 사람의 생산성은 50이라고 하자. 20시간을 확보했지만 4시간 잔 사람의 생산성은 1,000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적게 자고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매슈 워커(동료의 의견을 인용한 것)에 따르면 잠을 다섯 시간 이내로 자고도 전혀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인구 비율로 나타내면, 올림을 해도 0이다. 희귀한 유전자(BHLHE41)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유전자를 가질 확률은 번개에 맞을 확률(평생 동안 1만 2,000분의 1) 보다 훨씬 낮다고 한다.



수면 연구 분야의 거인인 데이비드 딩어스는 말했다.


"잠을 조금 자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분은 누구나 연구실로 와서 열흘 동안 머물러 달라고 공개 초청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잠을 자는 동안 인지 기능을 조사하여 이들의 뇌와 신체 기능이 무너지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 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금까지 자기주장을 입증하겠다고 나선 지원자는 한 명도 없다."







밤 11시에 잠들어서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수면 루틴을 몇 개월째 지켜 오고 있다. 야심 찬 지난 십 수년의 시도를 감안한다면 평범한 결말이다.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처음에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여러 시도 후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처음 그 자리에 있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겪은 시행착오를 통한 확신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흔들리지 않는 힘이 있다. 대체하기 어려운 에너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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