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은 완벽한가?
나를 바꾸는 70%의 법칙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써야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다르다. 우선 3개월짜리 글쓰기 강좌를 등록한다. 첫 시간에 강사가 말한다. 글쓰기는 독서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이후로 교과서를 제외한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수강을 멈추고 책부터 읽기로 결심한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 강사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중 관심 있는 책들을 장바구니로 옮긴다. 지인들의 추천도 받는다. 철학책도 몇 권 담는다. 인문학이 근간이라고 했다.
엑셀 시트에 '읽어야 할 백 권의 책' 목록표를 만든다. 그런데 시트에 적고 보니 목록표의 타이틀이 맘에 안 든다. 기왕 만드는 거 잘하고 싶다. 영어로 바꿔본다. 몇 차례 수정 끝에 '100 must-read books on writing'으로 정한다. 서체는 'arial black'이다. 깔끔해졌다. 다음은 별점을 선택할 수 있는 탭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빠질 수 없다. 별 5개는 빨간색, 4개는 주황색, 3개는 노란색, 2개는 겨자색, 1개는 회색으로 설정한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조건부서식'과 '데이터유효성검사'까지 등장한다. 탭을 눌러서 테스트를 해본다. 완벽하다. 이제 책 읽을 준비가 되었다.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드디어 도착했다. 가장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을 편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집중이 잘 안 된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목과 어깨가 아파온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 생각난다. 제목은 '천재보다 4배 빨리 배우는 학습법'이다. 30분 몰입해서 공부하고 5분 쉬어 주는 패턴을 반복하라고 했던 거 같다. 타이머를 30분으로 맞춘다. 몇 분 남았는지 신경이 쓰이지만 꾹 참는다. 5분을 남기고 결국 타이머를 확인한다. 잠시 후 타이머가 울린다. 5분 쉰다. 다시 30분으로 타이머를 맞춘다.
책 한 권을 읽는데 이틀이 걸렸다. 조급한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린 거 같다. 구글링을 한다. 성인이 책 한 권을 읽는데 드는 시간은 평균 5~6시간이란다. 나는 10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속독에 대해 공부해야겠다. 속독에 대한 책을 검색한다.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벌써 몇 달째 글을 쓸 준비만 하고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시작하기가 어렵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니, 실패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완벽한 도전을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 완벽한 준비를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를 위한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다. 완벽한 준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철저한 준비는 도전을 위한 것이 아닌, 도전하지 않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불행하다. 새로운 시도 없이 준비만 하는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어렵게 시도는 했다고 치자.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패 경험을 하나 늘리는 것에 그치고 만다. 완벽주의자들에게는 완벽이 아니면, 곧 실패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 세상에는 흑백만이 존재한다. 옳지 않으면 그른 것이고, 좋지 않으면 나쁜 것이며 최고가 아니면 최악이고, 성공이 아니면 실패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고 하자. 5시에 알람을 들은 거 같은데, 눈을 깜빡해보니 벌써 새벽 6시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책을 읽으면 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그냥 잔다. 오늘은 이미 실패한 날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기로 했지만, 이튿날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몇 숟갈 먹게 되었다. 더 이상 먹지 않으면 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한 통을 다 먹어 버린다. 오늘은 이미 망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패 경험은 늘어만 간다.
완벽주의자들의 목표는 탄탈로스의 사과이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다. 간혹 손 끝이 닿을 거 같으면, 목표가 너무 낮았던 건 아닌가 의심을 한다. 그러고는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목표를 높여버린다. 이쯤 되면, 완벽주의자들은 성공을 거부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공을 거부하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실패가 더해지며 두려움만 커져갈 뿐이다. 자존감은 낮아진다.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
알래스데어 클레이어의 삶은 완벽해 보았다.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유명한 학자가 되었으며,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이에 머무르지 않고 소설가, 시인으로도 활동했으며 자작곡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집필, 감독, 배급 등 전 과정을 직접 해낸, '용의 심장'이라는 TV 시리즈로 에미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48세의 나이에 기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였다.** 영국의 외과의사인 알렉산더 리딩은 인공 고관절 이식 분야의 권의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의료 실수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었다.***
그럼에도 완벽주의는 필요하다. 인류는 완벽을 추구하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충족되지 않는 끝없는 결핍은 위대한 혁신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가장 완벽한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조차 만족을 몰랐다. "내 작품은 진정 담아야 하는 가치의 반도 담지 못하고 있다."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링컨은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을 '완전한 실패'라고까지 하였으며,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티브 잡스의 성공 비결로 '강박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적 성향'을 꼽기도 하였다.
이들이 행복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들처럼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될 수 있는지는 논외로 하자.) 나는 아마 중간 어디쯤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완벽주의의 끝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벽주의의 건너편 끝도 아닌 어디쯤을. 그런데 이 지점을 찾는 것이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여갈수록, 지식이 쌓일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원래 적당히 하라는 말이 가장 어렵지 않은가.
오래전부터 하루의 성적표를 엑셀 시트로 관리하고 있다. 주요 항목에 대한 실행 여부를 기록하면 그날의 점수가 산출된다. 책을 한 권 읽으면 OO점, 산책을 하면 OO점, 글을 하나 쓰면 OO점으로 합산되는 식이다. 세부내용은 자주 바뀌어 왔지만 목표는 항상 100점이었다. 매월 목표를 달성한 날은 손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정오가 채 지나기도 전에 하루를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어차피 100점이 아니면 실패니까.
얼마 전부터 목표를 70점으로 조정하였다. 그리고 일간이 아닌 주간 단위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 못하면 내일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이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평균적인 성과가 월등하게 나아졌다. 포기하는 날이 줄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기에(스티브 잡스 수준의 역량을 가진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어쩌면 70점짜리 하루를 이어나가는 것이 진짜 완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꾸준함이 천재를 이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 탈 벤 샤하르, p35 참고
**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 탈 벤 샤하르, p13 참고
*** 네 명의 완벽주의자, 이동귀 외 2명, p2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