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함의 어려움

에필로그

by 날큐

총 40개의 꼭지로 거창하게 기획된 [서른아홉, 나에게 묻다] 연재를 15화로 소박하게 마무리하려 한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껴서일까? 완벽함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서 일까? 아니면 작은 성공을 내세우며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양 떠들어대고 싶지는 않아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아내의 조언이었던 거 같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꼭지 초안을 세 번이나 엎고 나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글이 계속 막혀. 진도가 안 나가. 다 썼는데 스스로 와닿지가 않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 아내의 답변은 이러했다. "글이 안 써진다는 건 그 주제를 다룰만한 깜냥이 안된다는 거야. 다루는 범위를 가능한 좁혀보고 그래도 안되면 묵혀뒀다가 나중에 도전해봐."



어렵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한 책, '생각의 탄생', 읽으면 인생이 바뀌지만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책, '괴델, 에셔, 바흐', 두께에서부터 압도되는 책, '생각에 관한 생각' 3종 세트를 읽고도, 브런치에서 독려 메시지를 두 번이나 받을 동안 생각을 정리 못한 터라 이렇다 할 변명거리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왕년의 모범생답게 브런치에서 제시하는 20화 이하, 60분 미만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지켰다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고 그동안 작성했던 많은 초안들을 서랍장에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동안 적지 않은 부분이 바뀌었다. 우선, 생활이 변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에 집착하던 내가 잠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루틴도 중요하지만 창의적인 생각을 위한 뭉터기 시간도 필요하다는 확신도 생겼다. 40대의 도전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한 것들의 방향을 정립했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어른들은 어떻게 스스로 공부해야 할지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완벽하다는 것의 양면, 비교의 무서움도 직접 글로 쓰며 마음에 또렷이 세길 수 있었다.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지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중용(中庸)'을 선택하겠다.



논어에는 중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중(中)'은 적중한다는 의미로,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지점이다. '용(庸)'은 '중'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세상은 양극단의 점으로 설명하기에는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이런 식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적정한 휴식은 오히려 효과적이다. 루틴을 지키면서 마음의 단단함을 얻을 수 있지만 지나친 루틴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 리더는 엄격해야 하지만 부드러워야 한다. 결정은 신속해야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커다란 혁신은 직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는 성장을 도와주지만, 지나치면 우리를 죽음으로 몰 수도 있다.



우리는 인생의 마스터키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선 각자에 맞는 적정한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밀고 나가야 한다. 중간에 다른 지점이 더 낫다고 생각되면 바꾸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계속 나아가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나에게 맞는 점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 연재는 크게 네 개의 파트로 기획했었다. '학습과 성장을 묻다.', '부와 성공을 묻다.', '일과 미래를 묻다.', '행복을 묻다.'가 그것이다. 많은 부분이 아쉽지만, 특히 '부와 성공을 묻다.'는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것 같다. 그 아쉬움을 담아 '한의원이 스타트업이라고?' 연재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업(자영업 수준이지만, 항상 사업가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고 있다.)을 하면서 실제 고민했던 주제들을 편안하고 무겁지 않게 다룰 예정이다. '서른아홉, 나에게 묻다.' 연재는 끝났지만, 관심 있고 필요한 분야를 익히고 글로 정리하는 여정은 이어가고 싶다. 다음 연재가 '서른아홉, 철학을 묻다.'일지, '서른아홉, 창의적인 생각을 묻다.'일지, 또 다른 어떤 주제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의미 있는 배움의 과정을 이어가며 '마흔아홉, 나에게 묻다.'는 지금보다 성장한 내가 쓰고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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