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주식투자를 해야 할까?

개미의 비애

by 날큐

* (주의) 주식 전문가가 아닌, 10여 년 전에 주식투자로 적지 않은 돈을 잃어본 일반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새벽 세시다. 잠이 깼다. 다우지수가 궁금해진다. 나스닥도 함께 찾아본다. 러시아 전쟁 상황도 주요 체크 포인트이다. 다행히 별일 없는 거 같다. 안심하며 다시 잠자리에 든다. 정신이 몽롱하지만 수년간 해오던 아침 독서를 빼먹을 수 없다.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우지수가 어떻게 마감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찾아본다. 나스닥도 함께 찾아본다. 러시아 전쟁 상황까지 확인하니 출근할 시간이다.



요즘 내 기분은 주가 지수와 같이 움직인다. 간 밤에 국제 유가가 크게 상승하며 나의 예민함도 같이 상승했다. 오늘은 중요한 보고가 있는 날이다. 보고서를 한 번 더 점검해봐야 하지만 귀찮다. 잠을 설쳐서 인지, 내 주식 잔고가 줄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보고한다. 잠시 후 부서장님께서 오라고 하신다. 긴장하며 건너편 자리에 앉는다. 실수가 있었던 거 같다. "OO 과장 요즘 무슨 일 있어?"하고 물으신다.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다. 더 윗선에 보고가 들어가기 전 실수를 찾아낸 부서장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숫자를 틀린 자신에 대한 죄책감도 솟구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스피지수가 궁금해진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다. 용돈벌이 수준이었다. 잃어도 공부했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약간 수익이 난 날에는 아내와 함께 평소에는 가기 어려운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쯤이었다. 기다리던 회사의 MBA 유학생 공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올해 5년 차 자격을 갖추며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술자리마다 반복되는 담당 임원의 격려도 기대감을 한창 부풀려 놓았다. 그런데 도전해 볼 기회조차 없어진 것이다. 누군가가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가 유학길에 올랐다. 그 후 내 주식 잔고는 늘어만 갔다. 처음에는 좋았다.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동아리 후배의 귀띔이 결정적이었던 거 같다. 이 정도 수익률이면 규모만 늘리면 유학길에 오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마통을 뽑아 규모를 늘렸다. 미수까지 손을 대며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는 아내에게 털어놓을 정도가 아니다. 벌써 몇 개월째 이러고 있다.







주식투자 열풍이다. 아니 광풍이다. 주변에 주식 안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종이책이 사라질 거라는 지금, 주식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몇 쇄는 기본이다. 얼마 전 스무 살을 갓 넘은 직원이 남자 친구와 함께 페이스북 주식을 샀다고 해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젠 동학개미가 서학개미로 변모하며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고 있는 걸까?



아쉽게도 작년 한 해 동안 개미투자자들은 평균 10% 정도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코스피지수가 3.6% 상승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상위 10%가 21.8%의 수익을 본 반면 하위 10%는 43.2%의 손실을 보았다. (국내 주식 투자 기준) 상위권은 성적이 괜찮다. 하지만 그들이 순수 개미인지는 의심이 간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서 주식운용 업무를 담당하다가 전업으로 투자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보통 경험뿐만 아니라 운용규모도 개인투자자 수준이 아니다. 대부분의 순수 개미 투자자들은 상위 10%보다는 하위 10%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만민이 평등하다며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켰던 최재우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듯, 동학 개미의 안타까운 열풍도 사그라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역시 투자론 시간에 배운 효율적시장가설(EMH)은 맞지 않나 보다. 그런데도 우리 개미들은 언제나처럼 개미핥기에게 빨려 들어가듯 이기기 힘든 전장에 입성하고 있다.



개인투자자가 이기기 힘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운용규모가 작다. 보통은 수천만 원이고 기껏 많아야 몇억 원 수준이다. 이에 반해 어지간한 운용사들은 막내 매니저에게 수백억 원 정도는 일임하는 수준이다. 주식투자는 돈싸움이다. 돈싸움에서 규모는 중요하다. 큰 규모의 자금은 주가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고(합법적인 선에서) 특정 종목에 대한 의존도도 낮출 수 있다.(분산투자로 인한 투자 포트폴리오 차원의 리스크 헷지)



어느 회사에나 전설이 있다. 종목을 찍어주기만 하면 적어도 두세 배 간다는 재무팀 백 부장, 몇 개월 투자로 강남의 아파트를 샀다는 설계팀 김 대리, 주식으로 20억을 벌고 반장 앞에서 뿌라야(스페너의 속어)를 바닥에 내던지고 퇴사했다는 협력사 이 씨가 그들이다. 개인투자자의 정보는 대부분 그런 부류로부터 온다. 게다가 많은 경우 한 타이밍 늦게 온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이 가진 정보의 양과 질은 다르다. 수업시간에는 파이어월(fire wall)에 의해 증권사 내부 부서들 간에도 정보가 공유되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주식 세일즈 미팅에 애널리스트를 동석시키는 현실에서는 벽에 금이 간 건 아닌지 의문이다.



대학시절 활동했던 재무 동아리에서는 "광화문에서 근무하면 퍼스트 티어, 여의도에서 근무하면 세컨드 티어"라는 말이 있었다. 투자은행(IB)이 있는 광화문 지역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고 국내 증권사가 밀집된 여의도가 그다음이라는 이야기였던 거 같다. 당시 인재들은 금융권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커리어의 정점을 맞은, 최고의 인재들이 지금 기관에서 주식을 운용하고 있다. 외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금융권 경력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야구 리그) 단장이나 사장으로 가는 것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시장이 그들의 두뇌를 인정하는 것이다. 개미가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 이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된다. 주식투자는 운이 대부분이라지만, 굳이 엘리트들과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






얼마 전부터 커피 관련 일을 하는 동생도 주식 투자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무제표는 어떻게 보냐, 유가가 올라가면 주가가 어떻게 되냐, ㅇㅇ산업의 프로세스는 어떠냐 등등 질문이 많았지만개월이 지난 지금은 제법 애널리스트처럼 말한다. 투자 성적표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최근 동생은 활기차 보인다.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열정적인 모습을 본 건 몇 년만인 듯하다. 가끔은 이거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주식투자에서 원하는 수익을 얻든, 취미가 되어버리든, 공부가 되어버리든 상관없다. 그렇게라도 빡빡한 세상에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다만 수업료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기사 내용 참고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220304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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