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학습법 (下)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큰 일이다. 기말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또 벼락치기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남은 2주 동안 공부해서 반드시 3.7 이상의 학점을 확보해야 한다. 학기 후 있을 교환학생 심사에서 원하는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리니치 빌리지를 거니는 상상을 하니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전략을 세운다. 기말고사는 총 5 과목이다. 경영대 전공수업이 3개, 교양수업이 2개이다. 우선 교양과목 시험은 그냥 교양으로 보기로 한다.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라 수업을 열심히 들은 편이다. 전날 바짝 암기하면 무난히 A-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전공이다.
우선 투자론이다. 재무 동아리에서 지난 학기에 스터디를 한 과목이라 자신 있다. 중간고사 성적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투자론을 수강하고 있는 같은 동아리 친구들도 꽤 있어 A+를 받기는 쉽지 않을 거 같다. 투자론은 A 학점을 목표로 최소한의 시간만 공부하기로 한다. 문제는 마케팅관리이다. 중간고사를 망친 데다가 기말 발표를 위한 팀원 중 프리라이더로 유명한 친구가 있다. A학점 이상을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B 학점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만 투입하기로 한다. 다음은 생산관리이다. 중간고사 성적이 A- 학점과 B+ 학점의 경계에 있다. 시간을 투자하면 A- 학점을 받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승부수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공부한다.
늦깎이 도전자들은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둔 학생의 처지이다. 이것저것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대학시절 시험도 전략적으로 준비했던 우리이지만, 인생의 커리큘럼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기간에 책을 수천 권 읽고 삶이 변했다는 유튜버의 말 한마디에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하고(그 짧은 시간에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내 수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코딩이 미래라는 기사 한 줄에 프로그래밍 강의를 넘성거리고,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말에 다짜고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편다. 아내와의 논쟁에서는 마치 검사가 된 듯 논리 정연하게 따져 묻지만, 정작 본인의 인생을 결정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문제는 직감에 의지한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이 맞았나 보다. 인간은 어림짐작을 좋아한다.
독학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아니, 독학만큼 전략이 중요한 분야는 없다. 평생에 걸쳐해야 하고 결과는 오롯이 내 인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다빈치가 아니다. 한정된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들을 선택해서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하나하나 점을 찍어 나가야 한다. 내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는 어떤 분야와 결합하면 더욱 효과적일지,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를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전략을 세우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길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가야 할 곳부터 알아야 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익숙하다. 효율이 최고의 가치였다. 모든 것은 최적화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비슷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수학 문제의 답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시장에서는 통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언제든지 팔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좋음'으로만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다름'이 필요하다. 정해진 판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을 바꿔야 한다. 본질주의에서 벗어난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창의력이고 혁신이며 독학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창의력은 훈련할 수 있을까? 혁신은 연결에서 발생한다. 점과 점을 잇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2005년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대학 때 청강한 타이포그래피의 수업이 애플 컴퓨터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폴리매스*가 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전문가가 돼야 할까?' 꼭지에서 자세히 다뤘다.)
점을 여러 개 찍고 점과 점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첫 번째 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특기이다. 커리어가 어느 정도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특기로 발전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학습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특기를 만들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진짜가 된다는 것' 꼭지에서 자세히 다뤘다.)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를 겪어 보지도 못하고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는 것은 폴리매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특기라고 할 수 있을까?
<부의 마스터키>의 '고소득스킬'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 힌트를 줄 수 있다. 저자 댄 록은 '부의 삼각형'의 한 변인 고소득스킬을 '산업이나 회사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월 천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정확히는 일만 달러이다.) 천만 원이라는 숫자에는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만 외부요인에 상관없이 언제든 생계를 이어나갈 만큼의 수입을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특기의 기준은 될 수 있을 듯하다.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정했다면, 다음은 '어떻게'이다. 우선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지식을 얻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은 독서이다.(어른의 학습법(上)에서 자세하게 다뤘다.) 그렇다면 한 분야에서 최소한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할까? 정해진 답은 없다. 30권을 읽어야 한다는 사람, 100권은 읽어야 한다는 사람, 심지어 1,0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야마구치 슈는 저서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지식과 견해를 가지려면 최소한 5권 정도의 입문서와 5권 정도의 전문서는 읽어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그래. 우선 10권이라도 읽어보자.
어른의 공부는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체화해야 한다. 다독가이지만 인격적으로도 제자리이고,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전문적인 역량도 크게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이들에게 독서는 지적 허영을 만족하는 수단일 뿐이다.(책 읽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학습의 관점에서 독서를 바라보기로 하자.) 우리는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찾아야 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공자도 이미 수 천년 전에 언급한 내용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은 두 가지 영역에서 연결된다. 무의식의 영역과 의식의 영역이다. 사람은 자는 동안 렘수면을 통해 깨어 있을 때 획득한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로 생산한다. 때로는 산책과 같은 휴식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발견들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충분히 자고 쉬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의식의 영역이다. 의식의 영역은 이성과 논리가 지배한다. 때문에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논란이 있다. 정리할 시간에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낫다는 주장과 정리를 통해 유용하고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파인만 학습법을 비롯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더군다나 글은 쌓아갈 수도 있다. 지적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아직도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사고방식을 못 버린 듯하다.)
복잡한 시대이다. 가끔 과거의 단순함이 그립기는 하지만, 늦은 도전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한다. 58년 개띠 시절에는 초반에 삐끗하면 성공의 길로 다시 합류하기가 어려웠다. 고등학교를 두 번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젠 아니다. 늦은 나이에도 얼마든지 자신만의 성공으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 독학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디자인할 수 있다. 누구나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아는 마케터, 법률 지식이 있는 재무통, 철학과 역사에 해박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재미와 함께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바야흐로 21세기 다빈치를 꿈꿀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 (폴리매스 저자 와카스 아메드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