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된다는 것
전문가를 정의할 수 있을까?
'카프칸 예견했었지.'라는 철학적인 가사로 시작하는 곡, 래퍼 피타입의 'Do the right rap'은 빡빡한 라임으로도 유명하지만, 흑인 랩스타들의 겉모습만 흉내 내며, 가짜 힙합을 하는 래퍼들을 저격한 날카로운 가사 또한 일품인 곡이다.(오래전 곡이라 그런지, 힙합이란 장르의 특성인지, 시대착오적이고 논란이 될 만한 과격한 단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듣기에 거북할 수는 있다.) 힙합이 정착되며, 가짜 래퍼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가짜 그리스도'는 천 년에 한 번 오지만, 현실에서 '가짜 전문가'는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짜 전문가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급조형이다. 이들은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를 재빠르게 알아챈다. 책을 몇 권 읽고 관련 분야에 대한 얕은 지식을 얻는다. 트렌드가 지나기 전에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어야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몇 년씩 걸리는 공부보다는 짧은 시간에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을 선호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비기를 신봉하며, 'OO 내에 OO 전문가 되는 법' 등의 자극적인 타이틀에 끌린다. 절대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아는 척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 시작은 가짜로 했지만 진짜로 발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다음은 경력형이다. 이들은 십수 년을 한 분야에 종사해왔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부장 정도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책상 한쪽 구석에는, 양재동 꽃시장에서나 볼 법한, 미세입자를 뿜어낼 수 있는, '난초 전용 압축분무기'가 놓여있다. 매일 철저하게 난 화분을 관리하기 때문에 보통은 근무년수만큼 오른팔의 전완근도 커져 있다. 전완근이 커서 일까? 이들은 별 다른 근거 없이, 자신을 전문가라고 믿는다. 부하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이 종종 자신을 전문가라고 치켜세워 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근거이다. 바뀌기 어려운 유형이지만, 가끔 회사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쌓아온 경험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은 자격형이다. 이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우등생이었다. 스스로 한 기대인지, 부모님이 기대하신 건지, 분명하지 않지만, 자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적이 거의 없다. 국가에서 공인하는 '사'자로 끝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보통 결혼정보회사에서 A 등급 이상을 받는다. 어느 정도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이들이라 상당수가 진짜 전문가로 발전하지만, 진짜 전문가라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가장 어려운 유형이며,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부류이기도 하다.
말은 쉽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실력은 명품백처럼 개런티 카드로 진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가짜로 보이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얼마든지 진짜로 보일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선이 있어서,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비전문가라고 나누기도 어렵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투자가이자 작가인, 마이클 모부신은 말한다. "우리는 실력과 경험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으면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문가가 되려면 반드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체계적인 훈련에 장기간 반복적으로 몰입해 정체기를 극복하고 전문가 수준에 이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장기간 반복적으로 몰입해 정체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이 만족하고 안주하는 적당한 선은 무얼까?', 열쇠는 바로 학습곡선이다.
학습곡선은 특정한 대상을 학습하는 데 투입된 시간 대비 학습 성취도를 나타내는 그래프이다. 알파벳 S자와 비슷하게 생겨서 S커브라고도 하는데, 두 개의 변곡점을 기준으로 세 구간으로 나누어진다. 첫 구간은 성장한다기보다는 익숙해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다. 지루한 연습이 반복된다. 골프로 치면 7번 아이언으로 똑딱이를 연습하는 기간이다. 잡고 있는 그립이 어색하다. 공을 맞추기조차 버겁다. 연습이 끝나면 손가락이 아프고 팔꿈치도 아프다. '내가 왜 골프를 시작해서 이 고생을 하나'하는 의문이 든다. '가짜'들은 보통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다음은 성장기이다. 공을 제법 맞추게 된다. 연습장 프로가 말한 손맛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부처님도 아닌데 연습장에 갈 때마다 매번 깨달음을 얻는다. 경제학 시간에 배웠던 복리의 법칙을 골프에서 체험하기도 한다. 고3 때 이후로 처음 몰입이라는 것도 해본다. 본인도 모르게 사무실 정수기 옆에서 골프 스윙 모션을 취하다 직장 동료와 눈을 마추지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제는 "몰입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가팔랐던 성장이 멈추고 정체기가 찾아온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데 결과는 시원치 않다. 가끔 퇴보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 지점에서, '진짜' 전문가들은 완벽해 보이는 도자기를 깨버리고 다시 만드는 수고를 감수하며 한 번의 성장을 더 이루어 낸다. 효율이 지배하는 영역을 벗어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커피가 쓴 것과 단 것으로 구분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비교적 뚜렷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지금은 복잡한 시대이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애초에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은 학습곡선의 성장기 정도는 겪어 봐야 하지 않을까? 순간순간 찾아오는 몰입의 기쁨을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성장의 임계점을 지나 정체의 고통도 한 번쯤은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비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진짜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