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문구가 대세다. 예전 같으면 다이어트 광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강도의 이야기들이 온갖 데에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짧은 기간'에 '그다지 부담이 없어 보이는 일'을 반복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다. 허무맹랑하지만 왠지 한 번은 소비하게 되는 그런 메시지가 팔리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확실하게 단정 지어 주는 말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혹적인 말은 '책만 읽었는데 성공했다'이다. 왜냐하면 독서는 그다지 큰 비용이나 노력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에는 큰 문제가 없다. 성공에는 여러 복잡한 인과관계가 존재하겠지만 본인이 그중에 하나를 크게 느꼈다는 데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일단 읽어 보세요. 그럼 성공합니다'로 메시지가 일반화된다면 이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진지하게 독서를 한 사람이라면 이런 단정적인 말은 하기 어렵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회사를 그만두고 마흔에 책을 읽게 된 이야기를 다뤘다. 지난 5년 간 겪은 크고 작은 변화들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 기획은 달랐다.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는 에세이를 원했다. 퇴사를 하고 우연히 책을 읽었는데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부자가 되었다! 이 기획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의 부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독서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우연'의 힘을 믿게 되었다. 우연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일어난 일'. 다시 말해 인간의 능력으로는 선후관계를 알 수 없는 것들을 뭉뚱그려 우리는 우연 - 또는 운 -이라 부른다. 나는 무언가를 알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서를 통해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광활한 우주 앞에 한 없이 작아 보이는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배웠다. 모든 것을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교만함에서 벗어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보다 심플해졌다. 우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면 되고 나머지는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통제할 수도 없는 결과에 연연하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겸손해졌다고 해야 할까?
생활도 변했다. 적게 자야 성공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대학시절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이 심어 놓은 환상에서 벗어났다. 이젠 의식적인 부분과 더불어 무의식의 힘도 믿는다. 양질의 휴식을 통해 지식과 지식이 연결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음을 안다. 수많은 천재들의 이야기를 덕에 휴식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무예타이 선수의 정강이와 같은 단단한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호기심이다. 기껏해야 망가진 주식 계좌의 잔고나 궁금해하던 아저씨가 온갖 것들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소년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사실 성장, 더 나아가 행복의 관점에서 호기심은 무척 중요하다. 어른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이유는 호기심 어린 순수한 눈망울에 있다.
뒤늦은 호기심은 독서를 확장시켰다. 실용서만 고집하던 내가 이젠 쓸모없어 보이는 책들을 읽는다. 우주, 과학, 수학, 철학, 역사, 심지어 지질학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요즘 내 관심사다. 장르도 넓어졌다. 이젠 내 책장에서 소설이나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중도 꽤 된다. 창의력은 일이십 대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도 버렸다. 오히려 지식과 경험이 축적된 사십 대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폭넓은 독서가 창의적인 사고의 재료를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독서 취향도 생겼다. 바로 전기문이다. 천재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마흔에 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독서를 통해 쌓은 지식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생명력을 얻으며 나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심도 하게 되었다. 천재들의 삶을 연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천재가 될 수 있었던 그들만의 무기를 찾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어쩌면 인생의 과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마흔에 시작한 독서의 테마는 변화였다. 나는 지난 5년 간 책을 읽으며 변했다.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했다. 그리고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삶이 변할 것이라 믿고 있다. 아니, 이미 내 삶은 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마흔에 시작한 독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