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작 뉴턴, 벤저민 프랭클린의 공통점을 아는가? 천재라고? 맞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다재다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본캐에 버금가는 다양한 부캐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스티브 잡스가 동경한 다빈치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빈치는 해부학, 광학, 화석학, 지질학, 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었고 이 같은 광범위한 지식은 그의 그림 곳곳에 녹아 있다. 뿐만 아니다. 교량, 수로, 무기 등을 설계할 정도로 공학에도 관심이 있었으며 심지어 야외극 제작자로 궁정에서 일하기도 했다.
아이작 뉴턴도 만만치 않다. 물리학 체계를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프린키피아》를 썼고 단 한 권의 책으로 - 양자역학 이전 - 물리학의 지배자가 되었다. 수학에서의 업적도 만만치 않다. - 라이프니츠와의 우선권 논쟁은 있지만 - 미분방정식을 만들어 대수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이와 더불어, 화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연금술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평생 신학을 연구하였으며, 말년에는 조폐국장, 왕립협회장 등의 공직자로 일하기도 하였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인쇄인 프랭클린'이라는 소박한 묘비명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인쇄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신문을 발행하며 사업을 확장하였다. 자신의 검소하고 성실한 생활을 기반으로 자기계발서를 쓰기도 하였다. 발명가로도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발명품은 역시 피뢰침이다. 피뢰침 발명 이후로는 그 유명세를 활용해 주로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독립운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으며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멀티태스킹을 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한 번에 한 가지에 몰입하였다. 물론 각자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집중하는 기간은 달랐다. 소년미 넘치는 다빈치가 가장 짧았다. 하지만 몰입의 밀도는 높았다. 그는 자연이라는 대우주와 인간이라는 소우주를 집요하게 관찰했으며 둘의 공통적인 패턴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흔적들은 고스란히 그의 그림들에 남아 있다. 또한 해부에 집중한 나머지 썩어가는 사체 옆에서 며칠씩 지내기도 하였다. 뉴턴은 진중한 외모에 걸맞게 몰입의 시간도 길었다. 몇 년씩 잠도 안 자고 끼니도 거르며 집중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으며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수은을 먹거나 자신의 눈 윗부분에 바늘을 찔러 넣는 등 위험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프랭클린도 몇 년씩 한 분야에 집중하였고 특히 말년에는 미국의 독립을 위해 상당기간 외교관으로 살아가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한 가지에 몰입하면서도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우선 세 명 모두 여러 분야 - 혹은 주제 -를 번갈아 가면서 탐구하였다. 다빈치는 자유롭고 순수한 생각의 흐름대로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 들었다. 기마상을 설계하다가 말에 관심을 갖고, 그래서 말을 해부하고, 그러다 보니 말의 해부에 대한 논문을 계획하고, 또 그러다 보니 더 청결한 마구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정리하게 되고, 결국 마구간을 위한 기계장치까지 설계하게 되는, 레오나르도 다운 방식으로 여러 분야의 경계를 허물었다. 뉴턴의 호기심은 다빈치에 비해 유통기한이 좀 더 길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 동안 물리학, 수학, 신학, 화학 등을 한 번에 하나씩 돌아가며 연구했다.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동안 정치, 외교, 발명, 사업, 자기계발 등을 오갔다.
또 한 가지는 반복했다는 점이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비롯한 몇 점의 그림을 평생 가지고 다녔는데, 다른 분야에 집중하다가도 중간중간에 몇 달씩 - 혹은 며칠씩 - 그림을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뉴턴도 연구가 벽에 가로막히거나 흥미가 떨어졌을 때는 예전에 연구했던 과제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프랭클린도 일이 진행이 잘 안 될 때마다 이전에 연구했던 과학실험을 꺼내 들며 머리를 식혔다. 셋 모두 몇 가지 분야는 끈을 놓지 않고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탐구하였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평생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 명 모두 주력 분야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빈치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다가 가끔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있을 정도였고 뉴턴도 중년 이후에는 물리학보다는 오히려 신학이나 화학 - 특히 연금술 -을 연구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프랭클린도 자기 계발서를 쓰는데 특별히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않았다.
특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각자 무기가 있었고 이는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빈치에게는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를 그렸다. 걷잡을 수 없는 상상력의 산물들도 그렸다. 그렇게 관찰과 상상은 그의 노트에서 시각화되었다. 이는 분명 레오나르도가 패턴을 발견하고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뉴턴에게는 집대성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특정 분야를 연구할 때마다 방대한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무질서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질서를 만들고 체계에 논리를 부여했다. 프랭클린은 글을 잘 썼다. 인쇄업을 출판업으로 확장하고 정치와 외교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데는 항상 그의 뛰어난 글솜씨가 있었다. 글쓰기는 프랭클린의 힘이었다.
이렇게 그들은 한 가지씩 몰입하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책과 책이 만나며 잊혔던 어릴 적 동경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나는 세 천재들의 이야기를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니 나가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여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분명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였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나는 천재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며 열망은 다듬어졌고, 결국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과업을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