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질문을 찾다

by 날큐

다재다능함을 동경해 왔다.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는 주인공인 김전일보다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이는 아케치 겐고를 좋아했다. 가수 《전람회》에서는 메인 보컬인 김동률보다 음악을 하다가 비즈니스 커리어에서도 성공한 서동욱을 좋아했다. 요즘에는 래퍼이자 힙합 레이블 대표이고 주류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박재범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재능이 있고 없고는 나중 문제였다. 전문가가 주류인 세상이었다. 모두가 전문가라는 목표를 향해 같은 트랙을 뛰고 있는 듯 보였다. 그 트랙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전공을 살려 좋은 직장에 가고 직장에서 한 가지 일만 하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는, 그런 보통의 삶을 향해 달려왔다.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찌 보면 아케치 켄고도 어디까지나 조연일 뿐이고 전람회 하면 대부분은 김동률만을 떠올리지 않는가? 박재범은 예외적으로 뛰어난 인물일지도. 박재범 만세!!


생각이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갈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폴리매스》라는 책이었다. 책은 말했다.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강박은 산업화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그 이전에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한' 폴리매스들이 지배했다고. 다가오는 창의력의 시대는 다시 폴리매스들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막연한 동경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맞는 말 같았다. 세상은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었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우물만 파는 것은 위험한 전략인 듯 보였다. 한창 우물을 파고 있는데 직업 자체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의력의 관점에서도 그랬다. 창의적인 사고는 연결에서 온다고 했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 한, 점과 점을 잇기 위해서는 생각의 재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생각의 재료는 다양한 관심사에서 온다. 창의력의 시대에 다재다능함이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효율적이기도 하다. - 《다동력》의 저자 호리에 다카후미의 말처럼 - 세 가지 분야에서 10% 안에 들면 0.1%(= 10% X 10% X 10%)의 인재가 되는 것이다. 열 명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0.1%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재능과 운이 따라야 가능한 영역이었다. 결정적으로 난 이미 한 우물만 파기는 글렀다. 회사 밖으로 나와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믿음이 확신이 되어갈 무렵 상반된 주장을 하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원씽》이었다. 책의 주제는 제목만큼이나 단순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찾아 그것에 집중하라! 엥.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 그럼 폴리매스는? 문제는 이 책도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도미노 효과를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고작 5 센티미터의 첫 번째 도미노를 넘어뜨리기만 하면 두 번째 도미노, 세 번째 도미노가 저절로 쓰러지며 결국 57 번째에는 지구에서 달에 이르는 거리만큼 큰 도미노가 쓰러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첫 번째 도미노를 넘어뜨리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인 듯했다. '성공이 성공을 부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니 나도 도미노를 넘어 뜨린 경험이 있었다. 대학 시절이었다. 팀 과제를 하고 있는데 팀원 하나가 자신이 속해 있는 재무 동아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좀 알아보니 나름 치열한 과정을 통해 멤버를 선발하고 있었고, 난 그 기준에 한참 모자라 보였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지원하였다. 그리고 운 좋게 합격했다. 동아리 친구들은 뛰어났다. 나는 그 친구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경영학도 복수전공하게 되었다. 덕분에 대기업 재무팀에 입사할 수 있었다. 동아리에서 익힌 지식들은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사내에서 가방끈이 짧은 축에 속했던 내가 '박사'라고 불리곤 했으니 말이다. 도미노가 계속 넘어지며 달나라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첫 번째 도미노의 힘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누구는 여러 가지를 하라고 하고 다른 누구는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 하다니.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원씽》의 저자 중 하나인 게리 켈러가 사업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았다. 구글링을 했다. 그는 세계 최대 부동산 회사의 창립자였다. 그런데 이 책을 쓰지 않았는가? 작가라는 말이다. 조금 더 찾아보니 사업 코치이자 트레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강연도 꽤 많이 하고 있는 듯했다. 배신감이 들었다. 지는 여러 가지를 하면서 나한테는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 분명 둘 중 하나였다. 게리 켈러가 세계적인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내가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했거나. 물론 전자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는 건데... 의심이 생겼다. 애당초 접근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까?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과 다재다능한 것은 정말 상충되는 개념일까? 상호보완적인 관계는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한 가지에 몰입하면서도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박재범도 그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한 거 같지는 않은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의외의 책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세 명의 천재들의 이야기에서였다.

이전 17화책과 책이 만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