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역시 공자님 말씀이 맞았나 보다. 퇴사 전 나는 늘 위태로웠고 책을 읽기 시작하고도 한동안은 얻는 게 없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급했다. 마치 화면의 점들을 모두 먹어치우려는 팩맨이라도 된 양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 넣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었다. 우선 지나간 과거를 돌아봤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상상했다. 의문이 생기는 지점들이 보였다. 그리고 의문에 해답을 줄 것만 같은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히곤 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됐다. 독서에 대한 기대는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책장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서야 변화가 시작됐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데 불현듯 다른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순간은 더 자주 찾아왔다. 지식과 지식이 연결될 때마다 생각이 떠올랐다. 또 다른 지식이 결합되면 생각의 깊이는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과 생각도 이어졌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보완하기도, 때로는 발전시키기도 하면서 관(觀)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겼다.
독서의 세계에서 1 더하기 1은 2가 아니었다. 3이 되기도, 4가 되기도, 운이 좋다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책과 책이 만나는 순간의 힘일 것이다. 물론 단 한 권의 책만으로도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인생이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생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설사 최고의 책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다른 책과 이어질 때 그 힘은 배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폭넓은 독서를 통해 책과 책이, 그리고 생각과 생각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독서의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몇 해전 같은 주제에 대해 상반된 주장을 하는 책을 만났다. 의문이 생겼다. 그 후 몇 권의 책을 더 읽으며 막연했던 의문은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고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질문을 찾았다. 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드넓은 백사장에서 은색 귀걸이를 찾는 느낌이었다. 당시 나는 무엇을 읽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누군가 창의성은 혼돈에서 온다고 했던가? 머릿속 무질서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의외의 책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세 권의 전기문에서였다.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쌓아온 단편적인 지식들을 하나로 모아 주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퍼즐이 완성되면서 나는 일과 성장, 그리고 성공에 관한 하나의 인생관을 갖게 되었다.
나아갈 길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컸다. 일단 방향이 서자 마음이 안정되었다. 덕분에 나는 흔들림 없이 현실에 충실할 수 있었다. 물론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어찌 보면 생각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독서를 한다. 하지만 설령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잘못되었다 하더라고 이젠 크게 두렵지 않다. 인생의 경로를 약간 틀면 된다. 나는 얼마든지 독서와 생각을 통해 그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나에게는 이미 책을 읽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답을 찾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몇 개의 꼭지에서는 그 경험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볼까 한다. 그것도 세상 모든 경험 중 가장 강렬하다는 첫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