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큐 Sep 11. 2023

진정한 여가를 꿈꾸며

인류의 번영은 노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하러 가지 않았고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이야기나 하며 보냈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확실히 노는 거였다. 조금 고상한 말로 바꾸면 '여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여가는 또 노는 것과는 약간 결을 달리 했다.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탐구하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토론을 통해 집단지성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공부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활동들을 여가라 하였다.



          진정한 여가. 어찌 보면 제대로 놀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아내와 내가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해도 돌아가는 한의원. 경제적으로 압박을 느끼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탐구하며 생각을 확장하고 이를 사업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는 한의원.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캐시 카우가 될 수 있는 한의원을 원했다.



           기한은 5년이었다. 그 안에 우리가 꿈꾸는 한의원을 만드는 것이 처음 목표였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목표의 반 정도를 이루었다. 나는 어느 정도 원하던 여가를 누리고 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요즘에는 천재들의 삶까지 연구하고 있다. 늦은 오후에 출근해 세네 시간 일하고 있으며 그 마저도 한의원 실무에 오롯이 시간을 할애하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 주 3일 진료를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빡빡하게. 그나마 진료가 없는 날은 글을 쓰거나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매출은 아직 불안정하며 수익은 근근이 먹고사는 정도이다. 뭐 코로나라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역시 모자란 우리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사이 목표가 더 커져버렸다. 이제는 우리 둘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그런 한의원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렇게 목표가 확장된 데는 현실적인 부분들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한의원 업계의 근로환경이 우리의 비전과 차이가 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가 처음 개원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의원에 다니는 직원들은 대부분 주 6일 일했다. 당연히 휴가도 없었다. 여기서 괴리가 발생했다. 우리 한의원의 캐치프레이즈는 '요즘 여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인데 우리 직원들이 너무나도 요즘 여자들이었다. 밖으로는 삶의 질을 외치면서 정작 한의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일종의 표리부동함을 참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우리 한의원은 주 4일 근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주 2일 근무자도 여럿 된다. 각자의 사정과 체력에 맞추어 근무시간을 조정하고 있다. 물론 주 5일 근무도 가능하다. 각자 근무일에 맞는 연차는 당연하다. 아내와 나는 근무 시스템만큼은 대기업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다. 게다가 급여도 중견기업 수준 - 주 5일 근무 기준 -은 된다. 한의원 치고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방향에는 장점이 상당히 있다. 우선 퇴사가가 적다. 우리 한의원에는 지난 1년 간 퇴사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거의 매달 퇴사자들로 고민하는 업계를 감안할 때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근속연수도 길다. 심지어 한의원 개원 후 몇 년간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모두 돌아오기도 하였다. 상황이 이러니 한의원의 분위기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환자가 편안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점은 한의원에 대한 직원들의 애착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우리 한의원에 오래 다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한의원이 망하는 거다. 당연히 충성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는 환자에 대한 태도로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우리 직원들은 친절하다. 직원들의 상냥함에는 체력적인 영향도 있다. 서비스직은 생각보다 무척 피곤한 업종이다.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지는 나도 겪어보고야 알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몸이 힘들면 태도가 좋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근무시간은 큰 도움이 된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아내와 내가 돈을 못 번다. 우리 한의원은 매출이 꽤 되는 편이지만 수익이 높지 않다. 세무사가 결산 때마다 비용을 보고 깜짝 놀란다. 물론 원인은 인건비다. 근무시간이 적으니 직원이 많이 필요한데 인당 급여는 높은 수준이니 당연하게도 인건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를 타개할 방법은 단 한 가지이다.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한의원을 알려야 한다. 이것이 아내가 진료가 없는 날에도 카페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아직 고집을 꺾고 있지 않다. 여전히 아내와 나, 더 나아가 직원들까지 여가를 누릴 수 있는 그런 한의원을 꿈꾸고 있다. 가끔은 이런 방향이 맞나 하는 회의감도 든다. 매출이 떨어질 때면 불안하기도 하다. 딸아이가 과일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남들처럼 해서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내와 나에게는 꿈이 있다. 인류의 번영까지는 아니지만 그 꿈은 무척 크다. 그리고 진정한 여가만이 그 원대한 꿈을 이뤄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포기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맞는 방향은 없다. 성공하면 그 방향이 맞는 것이다. 몇 년 뒤 우리가 걸어온 길이 맞았노라고 회상하고 싶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무척 기대되기도 한다. 제대로 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매거진의 이전글 5일, 4일 그리고 3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