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완성작은 고작 두 점이다. 적어도 다빈치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는 마틴 켐프에 의하면 그렇다. 레오나르도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너그럽게도 열다섯 점이라고 하였다. 다빈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작품까지 포함하면 그렇다는 거다. 두 점이든 열다섯 점이든, 천재 그것도 모자라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천재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감안한다면 무척 소박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그의 완성작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레오나르도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그림인 《모나리자》조차 그에게는 완성작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며 고치기를 반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빈치의 잣대이다. 일단 그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지면 우리에겐 더 이상 완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된다.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심지어 노트에 끄적인 스케치조차 그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예술작품이 된다. 이것이 완성된 작품이 없는 위대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인 것이다.
그는 납작한 종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줄 알았다. 그가 그린 인물들이 차렷 자세로 서있는 일은 거의 없다. 초상화마저 그렇다. 대개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과시라도 하는 듯 역동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인물의 표정, 움직일 때의 관절 모양, 배경이 되는 작은 식물의 위치까지 뭐 하나 허투루 그린 것이 없다. 철저하게 과학에 근거한다. 게다가 정교하다. 그의 치밀함은 빛의 방향에 따라 두 눈의 동공 크기를 다르게 그릴 정도였다. 덕분에 레오나르도가 그린 모든 것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인물의 표정과 눈빛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인슈타인이 사고의 영역을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바꾸었다면, 다빈치는 회화의 영역을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확장시켰다.
화가로서의 업적만으로도 다빈치는 천재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림만으로 그를 규정하기에는 레오나르도라는 인물은 지나칠 정도로 방대하고 복잡하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 그는 예술가이자 과학자였고 때로는 공학자이기도 했다. 군사학을 연구하였고 도시계획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바이올린을 닮은 악기인 리라를 만들었고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의 연주 실력은 단순히 취미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리라와 함께 레오나르도를 밀라노에 외교적 선물로 보냈을 정도니 말이다. 그 밖에도 해부학, 광학, 지질학, 지리학, 식물학, 건축학 등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 관심이 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업적을 남겼다.
아쉬운 점은 그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데는 무척 게을렀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생각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데 서툴렀던 것도 같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대개 논문을 쓰겠다고 다짐하였지만 단 한 개의 논문도 남기지 못했다. 때문에 시대를 앞서는 수많은 혁신과 발견들은 그의 업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뉴턴보다 먼저 중력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도 다빈치였고, 동맥경화를 최초로 설명한 것도 다빈치였다. '베르누이의 정리'가 발표되기 200년 전 유체역학을 연구한 것도 역시 다빈치였다. 참 미스터리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레오나르도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는 아인슈타인처럼 연필 한 자루 없이 생각만으로 위대한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매번 일을 끝맺지 못하고 자책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그는 사생아였고 왼손잡이였다. 동성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 뒤에는 경계를 허무는 힘, 다시 말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창의력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