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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Oct 10. 2023

경계를 허무는 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2/3)

레오나르도의 무기는?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은 정형화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난해한 창의력에 다빈치라는 다면적인 인물까지 더해지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창의적인 천재였다는 그의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그가 세상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던 요인을 파헤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빈치의 천재성을 뭉뚱그려 이야기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우리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될 뿐이다.



          천재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창의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독 창의력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의견이 다르고 잘못 알려진 부분도 꽤 있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창조물을 만들고 일요일 하루를 쉬었겠는가. 빅뱅도 최초의 한 점이 있어야 설명이 된다. 하물며 인간은 어떠하랴. 우리의 창조에는 반드시 근원이 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오해한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생각해 내는 능력이 창의력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창의력은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 된다. 그저 조물주의 영역이 되고 만다.



          인간의 창의력은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완전무결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인쇄기만 해도 그랬다. 프레스는 과일의 즙을 짜는 압착기에서 착안하였고 금속활자는 금화에 문양을 세기는 것을 보고 그대로 적용하였다. 종이는 중국에서 들여왔다. 구텐베르크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창의성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소수가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를 끝냈고 종교개혁을 이끌었으며 학문과 기술 발전의 초석이 되어 뒤쳐지던 유럽을 세계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다빈치의 첫 발명품인 방패도 이와 비슷했다. 방패를 채색해 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레오나르도는 입으로 불을 뿜는 무시무시한 용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로 한다. 그는 우선 귀뚜라미, 나비, 도마뱀, 메뚜기, 뱀, 박쥐를 잡아다 관찰했다. 그리고 이들의 부위를 섞어서 방패에 그림을 그렸다. 완성된 작품을 본 아버지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고 한다. 레오나르도임을 감안하면 조금은 직관적인 결합이었지만, 어린 아들의 발명품은 그의 아버지에게 적지 않은 돈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은 아버지가 받은 돈의 세 배의 가격에 밀라노 공작의 손에 들어갔다.



          그 후 다빈치의 창의력은 단순한 조합을 넘어 자연 속에서 패턴을 포착하고 이를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는 식물의 가지를 보며 강의 지류를 떠올렸고, 더 나아가 인간의 혈관과 유사한 점을 찾으려 하였다.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볼 때면 음식물의 경로를 거슬러 위장으로 이동하는 담즙을 생각했다. 식물의 씨앗을 관찰하면서는 인간 배아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레오나르도는 세상의 경계를 허물어갔다.






창의적인 사고, 즉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 지어 생각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지식이 있어야 한다. 생각의 재료는 많을수록 좋다. 많아야 연결될 확률도 높아진다. 창의성이 질보다 양에서 온다는 연구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다음으로는 패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특정한 규칙을 포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연결해야 한다. 연결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우연 - 또는 운 -이라 부른다.



          다빈치는 이 모든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생각의 재료들을 쌓아나갔고 뛰어난 관찰력으로 패턴을 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관찰한 것들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눈으로 관찰한 것들을 고스란히 시각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각화된 이미지들은 다양한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그의 노트에서 서로 연결되곤 했다. 게다가 그는 충분히 쉬었다. 즉, 무의식의 영역까지 활용했다는 말이다. 이러니 레오나르도를 창의적인 사고의 바이블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다빈치가 세상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던 요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호기심이다. 레오나르도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는 '하늘은 왜 파란지', '새는 어떻게 날 수 있는지', '정삼각형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은 어떻게 그리는지' 따위를 알고 싶어 했다. 심지어 딱따구리의 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해했다. 참 소년미 넘치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엉뚱한 것들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호기심은 실용적인 목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순수한 궁금증으로 수렴하였지만 말이다.



         후원자의 의뢰로 기마상을 제작할 때의 일이었다. 다빈치는 기마상을 설계하다가 말의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무척이나 그답게 그는 말을 해부하기로 한다. 그러다 보니 말의 해부에 대한 논문을 계획한다. 또 그러다 보니 더 청결한 마구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정리하게 되고 심지어 마구간을 위한 기계장치까지 고안하게 된다. 항상 그렇듯 이 모든 과정에서 완성된 것은 없었다. 비행기기를 연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기를 연구하다 보니 새 날개의 구조와 가슴근육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바람을 연구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물의 움직임까지 파고든다. 결국 물의 소용돌이와 비슷한 연인 살라이의 곱슬머리를 그리는 것으로 호기심은 일단락된다.



          관찰력도 뛰어났다. 그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자연과 인간, 심지어 기계장치의 공통적인 패턴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는 타고난 눈썰미에 집요한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다. 비행을 연구할 무렵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새를 관찰한 내용을 노트에 기록했는데 이는 무서우리만큼 세부적이고 정확했다. "어떤 새들은 날개를 위로 올릴 때보다 아래로 내릴 때 더 빨리 움직이는데, 비둘기 같은 새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다른 새들은 날개를 올릴 때보다 내릴 때 더 천천히 움직이는데, 까마귀와 그 비슷한 새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또한 까치를 비롯한 일부 새들은 날개를 올릴 때와 내릴 때 속도가 동일하다." 이 정도면 치밀함을 넘어 강박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빈치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초인적인 두뇌가 없었다. 그래서 추상적인 개념을 머릿속에서 발전시켜 나갈 수 없었다. 그 대신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스케치들은 서로 다른 것들의 접점을 찾게 해 주었다. 덕분에 그는 기계장치를 고안하다 인체의 관절을 떠올릴 수 있었고 물의 소용돌이를 그리다 곱슬머리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예술과 과학,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은 통합되었다.



          쉬기도 많이 쉬었다. 레오나르도는 창의력이 천천히 뜸을 들이는 데서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였다. 늘 그렇듯 작업이 지체되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후원자에게 그는 말했다. "대단한 천재성을 지닌 사람은 때로는 가장 적게 일할 때 가장 많은 것을 성취한다."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그의 말은 비록 후원자를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과로를 훈장으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의미가 있다. 양질의 휴식은 인간이 의식의 영역을 넘어 무의식의 영역, 즉 운을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꼭 살펴봐야 할 작품이 있다. 바로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에서는 예술과 과학이 교차하고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인간과 자연도 통합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림. 그것이 《모나리자》인 것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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