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속 리자의 미소는 신비롭다. 입 꼬리는 쳐져 있지만 우리를 향해 미소 짓는 듯 보인다. 하지만 집중해서 보면 미소는 이내 사라진다. 우리의 눈이 그녀의 입꼬리에 그려진 아주 가느다란 선들을 인식해서이다. 너무 열심히 보려 하면 오히려 안 보이는 웃음. 이 미스터리한 미소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뭐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다빈치의 강박적인 열정이 숨어있다. 레오나르도의 인생이 숨어있다.
다빈치는 미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했다. 그래서 웃음의 근원을 찾아가기로 결심했고, 무척이나 그답게 어두운 영안실에서 시체의 피부를 벗겨가며 그 안의 근육과 신경을 관찰하기로 한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어느 것이 뇌신경이고 어느 것이 척수신경인가?' 대체 어떤 화가가 미소를 표현하기 위해 해부를 하고 신경을 연구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그래서 알아야만 했다.
웃음을 연구함에 있어 입술을 통제하는 근육은 중요했다. 하지만 입술 근육 해부는 까다로웠다. 입술 근육은 크기가 작은 데다가 개수도 많고 피부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레오나르도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얼굴 근육과 신경을 그의 노트에 그렸다. 이것은 인간의 미소를 다룬 해부의 최초 사례가 되었다.
눈의 동공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다. 그래서 다빈치는 빛의 양에 따른 동공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빛의 양이 많아질수록 동공은 수축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양쪽 동공의 크기를 다르게 그렸다. 다빈치의 작품 속 인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을 직접 향하고 있는 쪽의 동공의 크기가 미세하게 작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걸작인 《모나리자》에서는 반대이다. 빛이 더 직접적으로 닿는 오른쪽 눈의 동공이 더 크다. 이것은 단순히 실수였을까? 아니면 리자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였을까? 아마 진실은 다빈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빈치는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해 광학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빛에 대한 지식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다. 그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쓸모없어 보이는 호기심은 다빈치의 회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관찰을 통해 자연 속에는 명확한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학과 광학, 해부학을 결합하여 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빈치가 보기에 선은 수학적인 개념일 뿐 물리적 실체가 없었다. 질량과 부피가 없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각은 광학을 탐구하면서 확장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빛이 안구의 한 지점으로 모인하고 생각했었는데, 다빈치가 보기에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점도 선과 같이 물리적 실체가 없는 수학적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모든 이미지가 안구의 한 점으로 모여들 경우, 수학적으로 점은 나누어질 수 없다고 증명되었으므로 우주의 모든 것은 한 덩어리이며 나누어질 수 없는 상태로 보일 것이다." 그는 안구의 해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각 인지가 망막 전체에 걸쳐 이뤄진다고 믿게 되었고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렸다. 이 같은 기법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모나리자》이다.
이제 이 위대한 그림의 배경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멀리 보이는 지질학적 형상과 안개 낀 산맥은 선사시대를 연상시킨다.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하며 그렸다는 이야기다. 상상 속 과거의 모습들은 푸르스름한 강을 사이에 두고 현재 - 리자가 살았던 시대 -와 이어진다.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산맥은 둥글둥글하다. 왼편의 아치형 다리도 다빈치가 살았던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다빈치의 붓질은 시간도 통합시킨다.
뿐만 아니다. 대우주인 자연과 소우주인 인간은 그림 속에서 연결된다. 리자의 오른편에 있는 구불구불한 길은 마치 그녀의 심장과 이어져 있는 듯하고, 왼편의 강물 역시 그녀의 어깨에 드리워진 스카프 속으로 흘러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도면 장자가 말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노력이 만들어낸 천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를 《천재들의 무기》 연재의 첫 번째 인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타고난 부분도 있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그림 실력이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눈썰미는 사실 욕심내기 어려울 만큼 천부적이다. 하지만 재능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그의 업적이 너무 위대하다. 지나치게 방대하다.
그는 경외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궁금했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은 관찰로 이어지곤 했다. 그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집요하게 호기심의 대상을 바라보았다. 이런 점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자연에 대한 겸손한 마음과 열정이 자아낸 인내심. 우리가 충분히 따라 해 볼 법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다. 노트는 다빈치의 창의력이 시작되는 공간이자 열매를 맺는 곳이었다. 레오나르도는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린 지시사항을 노트에 적었다. 관찰한 내용도 그렸다. 그의 노트는 뒤죽박죽이었다. 작성한 날짜도 없고 심지어 한참 뒤에 추가한 내용도 어지러이 섞여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혼란 속에서 다빈치의 창의성은 꽃을 피웠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은 연결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노트의 분량이다. 현존하는 다빈치 노트는 총 7,200페이지에 달한다. 그마저도 그가 작성한 노트의 4분의 1 정도가 남은 것이라고 추정된다. 천재라는 프레임으로 그를 가두기 미안해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에서는 '103호'라고 이름 붙여진 개미가 등장한다. 그는 인간이라는 동물을 파악하기 위해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지하에 갇힌 인간들을 구해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103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폭력성에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도와주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이때 다빈치의 그림을 보게 된다. 레오나르도의 노력과 열정이 느껴지기라도 한 걸까? 그는 결국 인간을 도와주기로 한다. 그렇다. 개미도 반하게 하는 그림을 그린 천재. 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이 정도면 스티브 잡스의 우상이라고 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