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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의식도 활용한다, 앙리 푸앵카레

by 날큐

창의적인 생각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찾아온다. 우리는 의식의 영역에서 이성과 논리라는 무기로 생각의 재료들을 잇기 위해 애써보지만, 의외로 위대한 발견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무작위적으로 보이는 연결의 인과관계를 알아내기 어렵기에 우리는 이를 '운'이라 부른다. 겸손한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각의 재료들을 쌓으며 양질의 휴식과 함께 운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앙리 푸앵카레는 무척 겸손한 사람일 것이다.


슈퍼스타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에 태어난 불운(?)으로 대중들에게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푸앵카레는 다방면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천재이다. 그는 본업을 수학자라고 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물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아인슈타인의 발표 이전 상대성 이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두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나머지 한 명은 헨드릭 로런츠였다 -. 그는 1904년에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의 추측'을 제안했으며 이는 한 세기 가까이 풀리지 않다가 2003년에 이르러서야 '페렐만'이라는 러시아 수학자가 해결하였다. 페렐만이 상금 백만 달러와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모두 거부하는 기행을 보이며 더욱 유명해진 문제였다. 그 밖에도 철학, 천문학, 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업적을 남겼는데 경도국 책임자로 지도 위에 위치와 시간의 기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무척 놀라운 점은 이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그는 하루에 네 시간만 일했다는 것이다.


푸앵카레는 창의적인 사고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창의력을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 정해진 시간에 하루에 두 번, 두 시간씩만 일했다. 나머지 시간은 무의식적인 사고를 유도하는데 할애하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유레카'의 순간을 위해 남겨 놓았다.


그는 저서 《과학과 방법》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이 사례에는 푸앵카레가 무의식을 활용하는 비밀이 모두 녹아 있다. 푸앵카레가 푹스함수를 연구할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푹스함스와 비슷한 함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내려고 2주 내내 매달려 있었던 그는 평상시와는 달리 커피를 마시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쉽사리 잠들지 못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고 서로 충돌했는데 그중에 두 개가 서로 밀착하여, 말하자면 안정된 조합을 만들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당초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푹스함수와 같은 종류의 함수가 하나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그는 결과를 쓰기만 하면 되었고 이는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후속 문제들을 고민하다가 지질학 장정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며칠간 수학을 잊고 지내다가 승합마차의 발판에 발을 올리는 순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탐사에서 돌아온 푸앵카레는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나 또다시 난관에 부딪친다. 일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자 그는 바닷가로 떠나기로 한다. 며칠 동안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지내던 중 - 그의 표현에 의하면 - "언제나처럼 간결하고도 느닷없이, 또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생각이 떠올랐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푸앵카레가 병역에 복무할 때 마무리된다. 성격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앞을 가로막던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된 것이다. 그렇게 푸앵카레는 향후 현대수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는 푹스함수에 대한 첫 번째 논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푸앵카레가 논문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우선 '휴식'이다. 푸앵카레는 일과 일 사이에 의도적으로 휴식을 끼워 넣었다. 일을 하면서 쌓아온 생각의 재료들을 무의식이 이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산책은 그가 즐겨 사용한 휴식의 방법이었다. 푸앵카레는 조용한 해변이나 숲길을 거닐며 무의식이 문제를 계속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곧잘 행운의 순간을 맞이하곤 하였다. 산책이 푸앵카레만의 방법은 아니다. 수많은 창의적인 천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산책을 즐겼다. 프린스턴 캠퍼스를 거닐던 아인슈타인, 점심식사 후 산책을 즐겼던 베토벤, 하루 두 시간의 산책 루틴을 지켰던 차이콥스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해서 동네 사람들이 그의 산책 시간에 시간을 맞추었다는 칸트. 그 밖에도 다윈, 괴테, 잡스까지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천재들은 산책을 했다. 버트런드 러셀이 게으름을 찬양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다른 한 가지는 '전환'이다. 푸앵카레는 일이 벽에 부딪치며 더 이상 진행이 안 될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일을 했다. 이러한 방식은 앞으로 소개할 아이작 뉴턴의 '(슬로다운) 멀티태스킹'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 누구보다 많은 명언을 남겼던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런 작업 방식을 윤작에 비유하였다. 윤작은 돌려짓기를 말하는데, 한 농지에 같은 작물을 계속 재배하지 않고 몇 가지 작물을 돌려가며 재배하는 방법이다. 윤작을 하면 땅의 힘이 회복되고 병충해나 잡초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어 결국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정신 작용에도 윤작의 원리가 작용된다고 보았고, 이는 다빈치, 벤저민 프랭클린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전환이 반드시 일에서 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휴식도 우리의 두뇌를 회복시키고 상쾌한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특히 여행은 공간이 바뀌며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천재들이 여행을 즐겼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생애를 여행으로 보낸 안드레센을 비롯해, 프랭클린, 괴테, 오바마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렇다고 해서 푸앵카레가 휴식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가 《과학과 방법》에서 언급했듯이, 무의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따른다. "무의식의 활동은 의식적 활동보다 한 발 앞서거나, 또는 다른 것의 뒤로 이어지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발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무의식이 이뤄내는 기적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선행- 또는 후행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아무런 성과 없이 허송세월하고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이러한 노력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발견을 위한 소중한 생각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된 실패에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척 안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푸앵카레의 삶과 저서에서 영감을 받은 월러스라는 영국인은 《사고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창의적 사고의 과정을 준비, 부화, 발현, 검증의 4단계로 정의한다. 준비 단계는 열심히 일하는 단계이고 부화는 휴식이나 다른 일로 전환하며 잠재의식 속에서 아이디어가 숙성되는 단계이며 발현은 무의식 속에서 아이디어가 연결되며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검증은 무의식이 선물해 준 아이디어를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검증하고 다듬는 과정이다. 결국 월러스가 정의한 네 가지 중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발현 단계밖에 없다. 나머지 세 가지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푸앵카레는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운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되는 부분까지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수학자답게 훗날 월러스가 정의한 발현 단계에서 운을 거머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는 잘 쉬었고, 일이 막히면 곧잘 다른 것들로 넘어갔다. 즉, 남들보다 아이디어를 부화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이것이 푸앵카레가 무의식을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다음 두 꼭지에서는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 창의력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우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했던 임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그는 바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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