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야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베이브 루스. 그는 한 가지도 하기 힘들다는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해낸 인물로 지금의 메이저리그- 미국 프로야구 -를 있게 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루스는 타자로서 더욱 뛰어났는데 단타 위주였던 데드볼 시대- 공의 반발력이 약해 타구가 멀리 나가지 않던 시기를 일컫는 말 -에 홈런을 펑펑 날리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야구는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었다. 실력과 더불어 스타성도 대단했다. 그가 외야 중앙 펜스로 배트를 뻗으며 홈런을 예고하는 장면- 흔히 '예고 홈런'이라 하며 진위 여부는 불투명하다 -은 그를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되었다. 그는 지배자였다. 적어도 동양에서 온 한 젊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타니 쇼헤이는 루스 이후 명맥이 끊겼던 투타겸업을 하는 선수이다.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내기 위해 모든 것을 세분화하는 현대 야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서부터 이미 '일본의 베이브 루스'라고 불리던 오타니는 이제 루스를 넘어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베이브 루스가 풀타임으로 투수와 타자의 역할을 모두 해낸 시즌은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초기 몇 년 동안 투수만 했고 타자로서 압도적인 성적을 낸 이후에는 공을 치는 데 전념하였다. 반면 오타니는 일본 리그 5년을 제외하더라도 201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여섯 시즌 동안 투타겸업을 지속해 왔다- 2024년에는 수술로 인해 공을 던질 수 없었다 -. 오타니의 남은 선수 생활까지 감안한다면 투타겸업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루스가 아닌 오타니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팀 동료가 된 먼시가 말했다. "이 친구는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제일 멀리 치고 공을 제일 세게 던지면서, 그 누구보다도 빨리 달린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오타니가 이루어 낸 업적은 지금 당장 은퇴하더라도 위대한 선수로 남기에 충분하다. 2021년 이후 그는 세 번의 MVP를 차지하였고 나머지 한 번도 애런 저지의 미친 활약이 없었다면 당연히 수상을 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팔꿈치 수술로 타자에 전념했던 2024년에는 미국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5050 클럽- 한 시즌에 홈런 50개와 도루 50개를 동시에 달성 -에 가입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이 야구천재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수많은 기록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야구에서 오타니의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투수와 타자 부문 모두 올스타에 선정된 그를 경기 내내 출전시키기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규정을 손봤어야 할 정도이다- 올스타 전에서 선발 투수가 물러난 이후에도 지명타자로 타석에 설 수 있는 제도로 흔히 '오타니 룰'이라고 한다 -. 그의 위상과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몸값도 이에 걸맞는다. 2024 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와 체결한 계약 규모는 종전 메이저리그 기록인 4.3억 달러를 훌쩍 넘는 7억 달러(계약기간 10년)였으며 이는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이었다. 신기한 것은 원화로 1조 원에 육박하는 계약의 승자를 LA 다저스로 보는 이들이 꽤 됐다는 점이다. 착하기도 하다. 게다가 잘생겼다. 그의 별명이 '만찢남-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를 선정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오타니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메이저 리그 진출 후에 다섯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프로선수에게 재활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한다. 회복에는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 소요되며 그 기간 동안 반복적이고 지난한 동작들을 수행해야 한다. 신체적인 어려움 뒤에는 정신적인 문제들이 뒤따른다. '예전과 같은 기량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팀에 복귀했을 때에도 내 자리가 있을까?' 물론 오타니 같은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는 선수가 자리를 걱정하지는 않겠지만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하고 있는 오타니에게 쏟아진 우려와 의심은 다른 선수들의 몇 배는 되었다. 언론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봤으며 그에게는 심지어 시범 경기에서의 부진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는 것에 익숙하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의 투타겸업 능력을 증명했음에도 미국에 진출할 당시 수많은 전문가들, 야구 선후배들, 심지어 의사들까지 나와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열거하였다. 미국에서의 첫 시즌을 완주하지 못하고 토미존 수술을 받았을 당시 언론은 그가 투수와 타자 둘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미 투타겸업을 수차례 입증한 2023년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을 때조차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어찌 보면 오타니는 선수 생활 대부분을 주변의 의심과 함께 한 셈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