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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by 신성규

종종 기술이 예술을 대체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러나 그 질문은 단순한 기능의 문제가 아니다.

피아노의 건반 위를 달리는 손가락,

그 손가락에 실린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공간에 새기는 시간의 결—

이것이 피아니스트다.


기계는 정확하다.

누구보다 빠르고, 실수 없이, 계산된 압력과 속도로

쇼팽을, 리스트를,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함 속에 주저함이 없는 완벽함은,

우리에게 어쩐지 무감각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왜일까?


우리는 연주에서 인간을 느낀다.

그것은 단지 소리가 아니라,

손끝의 떨림, 숨소리의 간격,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이 모든 것이 우리로 하여금

저 사람은 지금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는다.

우리는 눈을 감고 들어도, 기계가 연주한 음악과 사람의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점점 더 구분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터치 패턴과 타이밍까지 학습하고,

감정을 모델링해 마치 마음이 있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기계는 느끼기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기계는 표현하려고 감정을 흉내 내지만,

인간은 넘쳐 흐르는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연주한다.


그 차이는, 경험의 유무, 그리고 고통의 흔적이다.


그래서 기계가 피아니스트를 흉내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흉내가 완전히 동일한 감동으로 번역되기까지는,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숨결을 찾아 헤맬 것이다.


사람은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듣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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