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사회는 천재를 양산하는 공장을 자처했다.
수학경시대회, 과학고, 올림피아드, 의대 진학.
모두 정해진 규칙 안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능력을 천재성이라 불렀다.
그들은 빠른 연산 능력과 높은 인지 속도를 무기로 사회의 고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 서 있다.
이제 그 모든 ‘문제 풀이’는 인간보다 AI가 더 잘한다.
정답을 향한 속도 경쟁은 이미 인간의 게임이 아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답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사람,
즉 “이건 왜 이래야 하지?”, “이 규칙 자체가 틀린 거 아냐?”라고 말할 수 있는 상상력의 천재다.
한국형 천재는 시스템 안에서 최대치를 발휘하는 인재다.
그러나 AI 시대는 시스템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사람을 원한다.
즉, 구조 바깥에서 발상하고, 불확실성과 모순을 감수하며,
예측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방향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답”을 잘 찾는 인재에 목을 매고 있다.
그리고 창의성과 상상력은 교양의 일부로만 소비되고,
진짜로 중요한 영역—국가 정책, 기술 전략, 교육 설계, 문화 기획—에는 접근조차 못 한다.
한국의 싱크탱크는 정보는 풍부하지만 질문이 가난하다.
그들은 데이터를 읽지만, 내일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다.
보고서는 많지만, 설계도는 없다.
예측은 많지만, 비전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건 안정적인 결론이지, 불편한 통찰이 아니다.
그러니 AI가 온다고 해도, 그것을 도구로 활용할 비전조차 부재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질문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건 ‘빠르게 정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것을 직면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고를 중단하지 않고, 틀릴 권리를 감수하고,
패턴이 아니라 경계 밖을 상상한다.
AI와 함께 일할 시대의 진짜 천재는,
AI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즉, 감정, 직관, 철학, 윤리, 상징, 세계관—이런 것들을 예술처럼 설계하는 사유의 창작자다.
한국형 천재는 곧 시스템의 유물이 될 것이다.
이제는 상상력이 곧 실력인 시대가 온다.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문제를 바꾸는 사람으로,
정답을 맞히는 사람에서 질문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진정 미래를 준비하려면,
더 느리고, 더 비효율적이며, 더 불확실한 사고를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야 한다.
그들이 바로 AI 시대 이후에도 인간으로 살아남을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