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 보상사회의 맹점

by 신성규

이 사회는 어딘가 이상하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 졸업장을 ‘능력’의 증표처럼 취급하지만, 실상 그것은 능력보다 순응의 결과물에 가깝다.

지방대라도, 전공이 무엇이든, 심지어 공부에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단지 졸업만 했다는 사실로 ‘정해진 루트를 따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필 여부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보다는,

국가가 요구한 통과의례를 저항 없이 이행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으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우리 사회가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창의성’이나 ‘자생적 판단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구조에 얼마나 잘 맞추는지를 평가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고졸자에겐 졸업장 대신 자격증을 요구한다.

그 자격증이 엄청난 전문성을 입증하진 않는다.

다만 정해진 교재, 정해진 시험, 정해진 루트를 따랐다는 ‘성실성의 증거’로 기능한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얼마나 ‘절차를 따르는 능력’을 중시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능력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측정된다.

문제는, 이 형식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적합한가이다.

창의력, 적응력, 협업 능력, 질문의 힘—이런 것들은 자격증이나 졸업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그 형식적 증명서만으로 인재를 판단하려 한다.


예외가 있다면 석박사다.

그들에게는 학벌보다 논문, 즉 질문하는 능력과 사유의 깊이가 요구된다.

석사에서 박사로 갈수록 더 이상 지식의 암기나 정답이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제기했는가,

어떤 통찰을 스스로 찾아냈는가이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대학 이전까지는 순응이 미덕이었지만,

정작 고등교육의 끝에 가면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틀릴 자유를 감수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이 두 기준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기 사고를 하는 사람보다, 순응을 잘한 사람을 더 편안하게 여긴다.

이 불균형은 지식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이 사회에서 졸업장과 자격증은 능력의 보증서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제도화된 삶의 과정에 얼마나 잘 순응했는가’를 나타내는 사회적 신호다.

그리고 그 신호들은 진짜 잠재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창의력 있는 사람, 자기 판단을 가진 사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을 오히려 의심하거나 불편해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정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더 많은 실패,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예외와 돌발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우리는 사회가 사람을 판단하는 이 서류 중심의 사고 구조부터 해체해야 한다.

졸업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며,

자격증은 입장권이지 증명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잘못된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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