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다.
전쟁 폐허 위에서 경제 강국이 되었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겪은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 기저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징병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국가가 개인을 호출하고, 부품처럼 대체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시스템.
그것이 경제성장기 한국 사회를 지탱한 무형의 질서였다.
위계에 대한 복종, 개인성의 상실, 집단 효율성의 극대화—
이 모든 것은 군대 문화에서 체화되었고, 곧 사회의 기본값이 되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부조리한 위계, 비합리적 명령, 말도 안 되는 문화—
이 모든 건 전역과 함께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사회에 나와 다시 마주친 부조리 앞에서 들은 말은 이랬다.
“군대 다녀왔잖아? 그냥 군대라고 생각해.”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군대 문화에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장이다.
직장에서, 공공기관에서, 대학에서도 지시를 따르고, 질문은 하지 않으며, 문제를 참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이 문화의 기저에는 징병제에서 기인한 위계와 복종의 논리가 있다.
징병제는 분명 효율적이었다.
국가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배치하고, 통제하며, 산업화의 톱니바퀴로 사용할 수 있었다.
명령 체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지시에 신속히 반응하고,
갈등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고유성보다는 집단의 요구를 우선시했다.
이 구조는 한국 사회를 짧은 시간에 ‘성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율적 사고와 창의성, 문제 제기 능력은 제한되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하기보단 견디는 법을 배웠고,
결국 그 문화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많은 대기업과 연구기관에서 해외 유학파를 상위에 배치하는 구조는 단순히 학벌이나 영어 능력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군대식 위계와 정답 중심 교육에서 벗어난 사고 유연성을 지녔다는 기대가 작동한다.
한국에서 훈련된 두뇌는 빠르지만, 경직되어 있다.
효율적이지만 창의적이지 않다.
명확하지만, 질문하지 않는다.
이 딜레마의 근간에는, 결국 징병제가 심은 사고의 뿌리가 있다.
징병제는 한국을 빠르게 성장시킨 동력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지금의 한국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율보다 복종을, 창의보다 효율을, 질문보다 침묵을 장려한 사회는
결국 복사된 인간만을 양산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다시 묻고,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군대식 질서에 적응한 사람만이 사회의 정답이 되어야 하는가?
성장이 끝난 지금, 우리는 성숙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 성숙은 징병제가 아니라, 질문하는 개인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