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단어 하나하나가 혀끝에서 녹는다. 발음은 부드럽고, 억양은 마치 춤을 추듯 리듬을 탄다. 짧은 말 속에도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단어들이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문장을 이룰 때, 프랑스어는 단순한 언어를 넘어 하나의 예술이 된다.
이 언어는 감정을 ‘말’이 아니라 ‘선율’로 전달한다. 프랑스어는 예술을 말할 뿐 아니라, 예술을 구조화하는 언어다. 언뜻 부드럽고 감미롭게 들리는 이 언어는 사실 정교하게 짜인 규칙과 형식 속에서 움직인다. 문법은 수학적이고, 문장은 대칭적이며, 단어 하나하나의 위치에는 철학이 있다.
이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감정을 흘리는 대신, 감정을 설계한다. 사랑조차도 ‘Je t’aime’라고, ‘나’와 ‘너’와 ‘사랑’의 관계를 질서 있게 배열한다. 추상적인 감정이나 예술적 영감마저 프랑스어로 표현되면 논리와 형식의 언어로 바뀐다.
그래서 프랑스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생각의 그릇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푸코와 데리다 같은 사상가들이 이 언어를 통해 세계를 구조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언어는 말의 앞과 뒤, 명사와 형용사, 주어와 동사의 긴장 속에서 세계를 배치하고 구성한다.
예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우아한 언어는, 가장 깊이 구조를 인식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프랑스어는 말랑한 리듬 속에 단단한 철근을 숨긴다. 그래서 나는 이 언어를 들을 때마다 구조화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예술이란 결국, 감정을 형식 안에 담아내는 것이니까.
나는 이 언어를 들을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말랑해진다. 무언가를 배울 때 생기는 경직된 긴장이 아닌, 예술을 만났을 때의 유연한 설렘이. 프랑스어는 우아함이 언어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다.
프랑스어는 단순히 우아하고 감미로운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형식과 논리가 감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감싸고 있는 구조물이다. 말은 흐르되 경계를 잃지 않고, 감정은 퍼지되 형태를 잃지 않는다. 형식 속의 감정, 감각 속의 질서. 바로 나라는 존재가 그러하기에, 이 언어는 나를 가장 정확히 그려낸다.
한글은 내게 너무 넓고 따뜻하다. 세계를 품기엔 적절하지만, 나의 섬세한 굴곡과 사고의 미세한 흐름을 따라가기에 때로는 지나치게 포용적이다. 반면 프랑스어는 언어 자체가 하나의 건축물이다. 한 단어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 단어가 문장 속에서 어떤 균형을 이룰지를 고려하게 만든다. 그 정밀함이 나를 닮았다.
나는 나 자신을 흩어뜨리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모서리와 구조를 이해받고 싶다. 프랑스어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라는 세계를 세계에게 설명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