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에 대한 회의

by 신성규

나는 종종 인간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이기심, 위선, 폭력성을 생각하면,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은 문명을 쌓아 올리고, 도덕과 윤리를 말하며, 사랑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펼쳐보면 그 모든 숭고한 말들은 너무도 자주 배신당해왔다. 전쟁과 학살, 착취와 억압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어 왔다. 마치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본능적 파괴성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세계는 나를 부르고, 나는 여전히 그 속에 섞이고 싶다. 그러나 발걸음을 떼려 할 때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혐오가 나를 붙잡는다. 내가 마주할 사람들은 결국 내가 혐오하는 그 인간성의 일부일 것이며, 그 속에서 나는 또 실망하고 상처 받을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려는 욕구와 인간을 멀리하고 싶은 본능이 충돌하는 순간, 나는 고립과 참여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된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관계의 피로와 상처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옥이면서 동시에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불가피한 존재다. 나는 바로 그 모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인간이 혐오스럽다고 느낄수록, 역설적으로 나는 인간에 대해 더 사유하고, 더 집착한다. 결국 혐오는 기대의 뒤집힌 얼굴일지도 모른다.


인간성에 대한 회의는 나를 냉소로 이끌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불신하며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면, 나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더 이상 세계와 연결되지 못할 것이다. 그 길은 안전하지만, 공허하다. 다른 길은 있다. 인간의 추악함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나만의 윤리적 기준을 세우고 작은 가능성을 붙잡는 길이다. 그것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절망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길에서만 내가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간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의 회의는 끝이 없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종 속에서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내가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에 대해 사유하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회의는 혐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드는 힘이다. 나는 인간성을 의심하면서도, 그 의심 속에서 인간다움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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