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선 신경의 일기

by 신성규

죽음은 늘 내게 두 얼굴로 다가온다. 때로는 차갑고 섬뜩한 두려움으로, 때로는 잠처럼 자연스럽고 평온한 귀결로. 낮에는 그것을 피하고 싶다가도, 밤이 되어 잠에 드는 순간에는 그 죽음을 마치 휴식처럼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죽음을 향한 이 모순된 감정은 사실 삶에 대한 태도의 이중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나는 살고 싶어 버티지만, 그 버팀이 반복될수록 삶은 점점 무뎌지고 매너리즘으로 덮인다.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의 신경은 늘 곤두서 있다. 사소한 일에도 긴장이 흘러넘치고, 목과 어깨는 돌처럼 굳는다.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와 호흡조차 자유롭지 않다. 몸은 내 마음의 초상화가 되어, 내가 얼마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몸과 마음은 서로를 압박하며, 피로를 악순환처럼 되새긴다.


이 긴장의 근원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의 상실이 있다. 인간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가능성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불신과 피로뿐이다. 사람들의 말과 행위 속에서 진실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 속에서 되돌아오는 것은 종종 위선과 계산이다. 그렇게 인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수록, 나의 애정은 식어간다. 애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냉소와 혐오, 그리고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나 자신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도, 인간을 멀리하는 태도도 결국은 삶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기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인간에게 더 큰 진실을 바라왔기에 실망했고,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동시에 그 평온을 원한다. 혐오는 무관심이 아니라, 좌절된 사랑의 그림자다.


삶은 권태와 매너리즘으로 나를 짓누르지만, 그 속에서 내가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완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오히려 이 질문들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죽음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긴장을 안고 살아야 한다. 목과 어깨가 뻣뻣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에도, 나는 여전히 버티며 질문한다. 버티는 삶은 불완전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나의 인간성을 증명한다. 죽음이 평온의 이름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는 자로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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