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 속의 얼굴들

by 신성규

가족들을 바라볼 때, 나는 오래도록 결함만을 보았다.

조금 어긋난 말투, 부서진 습관, 제멋대로 흐르는 행동들,

그 속에서 나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망가져 있을까,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왜 같은 상처를 반복할까.

예전의 나는 그 결함을 혐오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았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나는 그 결함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들의 망가짐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나 악의가 아니다.

삶의 무게, 선택과 후회, 포기와 갈망이 쌓인 흔적임을 본다.

그들도 나처럼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의 좌절과 결핍, 무수한 실패 속에서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결함은 더 이상 혐오의 이유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증거이다.

모든 실수와 부족함, 실패와 미숙함은

그들만의 언어로 삶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속에서 연민을 느끼고,

비난보다 이해를 먼저 떠올린다.


가끔은 그 결함이 나를 시험한다.

말없이 서로를 상처 주고, 이해하지 못해 좌절하고,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가장 큰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나는 깨닫는다.

가족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는 것을.

완전하지 않음 속에서 우리는 이해하고, 감싸고,

조금씩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나 역시 결함을 안고 있으며,

부서지고 흔들리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 결함이 나만의 언어로, 나만의 삶을 말한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이제는 가족의 결함을 보는 눈과,

나 자신의 결함을 바라보는 눈이 닮아간다.

서로의 결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동일한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낀다.


결함 속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나는 알게 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아름답고,

부서진 채로 살아가기 때문에 연결될 수 있으며,

서로의 결함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족은

단순한 혈연을 넘어 존재의 의미를 공유하는 곳이 된다.


나는 오늘도 그 얼굴들을 본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 나지만,

그 결함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또한, 조금씩 이해받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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