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본래 초월적 진리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대와 권력, 사회적 위치에 따라 정치적 색깔을 띠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사회에서 두 주요 기독교 전통이 서로 정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천주교는 진보와 함께 걷고, 개신교는 보수와 손을 잡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천주교는 오랜 세월 ‘억눌린 자들의 종교’였다. 조선 후기 박해를 받으며 생존했던 기억은 자연스레 권력보다는 민중과 함께하는 태도로 이어졌다.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그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바티칸의 사회 교리는 언제나 인권과 평화, 빈부격차의 해소를 강조해왔다. 천주교는 ‘구원’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차원에 가두지 않고 사회 구조의 정의로 확장시켰다. 그 결과, 가톨릭의 진보성은 종교적 교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고난과 세계 교회의 흐름 속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반면, 한국 개신교는 미국에서 이식된 씨앗이었다. 그것은 복음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의 색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반공은 곧 신앙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고, 이데올로기의 전선 속에서 개신교는 자연스레 보수 정치와 결탁했다. 대형 교회 중심의 성장주의는 자본주의적 질서와 친화했고,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신학은 사회 구조적 모순보다는 개인의 도덕적 책임에 초점을 맞췄다. 이 흐름은 성 역할, 가정, 성적 규범 같은 영역에서 극단적 보수성을 강화시켰다.
결국 두 종교 전통은 서로 다른 기억을 품고 있다. 천주교는 억압당한 기억을, 개신교는 권력과 결합한 기억을. 이 기억은 단순한 종교적 차이를 넘어, 정치적 행동과 사회적 태도의 뿌리가 된다.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신을 믿는 집단이라도, 역사와 권력의 경험이 다르면 전혀 다른 정치적 색을 띤다. 천주교가 진보적이고 개신교가 보수적인 것은 교리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이 서 있던 자리와 걸어온 길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열린다. 만약 한국 사회의 권력 지형과 국제적 흐름이 달라진다면, 이 종교들의 정치적 얼굴도 바뀔 수 있을까? 종교는 본질적으로 초월의 언어를 말하지만, 그 언어는 언제나 현실 속에서 변주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