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삶의 방식

by 신성규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독특한 긴장이 보인다. 사람들은 늘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학생은 성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직장인은 승진을 위해 청춘을 소모하며, 부모는 자식의 내일을 위해 오늘의 삶을 무너뜨린다. 이 문화는 단순한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적 시간 의식이다. 한국인은 ‘지금’이 아니라 ‘곧 다가올 것’을 살아간다.


한국인의 미래 집착은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랫동안 신분 사회였던 조선은, 과거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계속해서 신분을 상승시켜야 하는 욕망을 학습시켰다. 근대 이후에도 그 기질은 교육·입시·직업 제도를 통해 그대로 이어졌다.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내가 진짜 나다.” 이 사고방식이 한국적 근대화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깊은 결핍이 숨어 있다. 한국인은 끊임없이 현재의 자신을 부정한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는 불안은, 만족을 잠시도 허락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욕망은 국가 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개인을 무한 경쟁 속에서 불안과 피로로 몰아넣었다.


반대로 일본은 주어진 것을 품으려는 문화적 성향을 보인다. 직업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일본인은 대체로 자기 몫에 주어진 자리를 유지하며 충실하려 한다. 한 회사에 평생을 헌신하는 관행, 세세한 일상적 의례를 중시하는 태도, 작은 만족을 소중히 여기는 미학은 모두 현재 지향적이다.


일본인의 이러한 태도는 때로는 체념처럼 보인다. 큰 변화를 바라지 않고, 자기 삶의 한계를 인정하며,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래서 한국인의 눈에는 야망이 없어 보이고, 정체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 현재 지향성을 통해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며, 개인에게는 불안을 최소화하는 정서를 제공한다.


이 두 문화는 시간과 인간의 관계를 양극단으로 드러낸다.


한국은 미래에 집착하여 발전을 추구하지만, 그 대가로 현재의 불안을 떠안는다.

일본은 현재를 받아들이며 조화를 추구하지만, 그 대가로 미래의 정체를 감수한다.


즉, 한국은 늘 달리느라 지쳐 있고, 일본은 멈추어 서서 정지된 안정 속에 머문다. 하나는 속도의 문화, 다른 하나는 정지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이 질문은 결국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가, 현재에 있는가?

한국적 사고는 행복을 도래할 것에 걸고, 일본적 사고는 행복을 주어진 것에 묶는다. 한국인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오늘을 희생하고, 일본인은 이미 주어진 오늘 때문에 내일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사함으로써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현재의 순간 속에서만 실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인간 실존의 두 반쪽을 각기 붙잡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불안과 일본의 체념은 서로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은 일본의 ‘현재의 충만’을 배워야 하고, 일본은 한국의 ‘미래를 향한 추진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이 현재의 만족을 배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달려도 행복에 닿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 미래의 지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조화로워도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삶의 지혜란,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현재의 충만을 누리는 것에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서로를 배제하는 두 길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통합해야 할 두 가지 시간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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