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

by 신성규

발자크를 읽는 일은 단순히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인간 전체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하는 듯한 황홀감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다. 한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은 어김없이 다른 작품에서 다시 나타난다. 익숙한 얼굴이 불현듯 나타나는 순간, 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사라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낀다. 마치 내가 발자크의 세계에 입주한 한 명의 시민이라도 된 듯.


보통의 범재들은 선을 탐구하거나, 혹은 악을 탐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이뤄져 있지 않다. 사랑은 동시에 집착이 되고, 욕망은 창조와 파괴의 이중주를 연주한다. 발자크는 인간을 하나의 극단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모순과 양극성, 그리고 끝없는 회색지대 속에 두었다. 그리하여 그의 인물들은 살아 있는 현실처럼 다층적으로 숨쉬며,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내가 그를 천재라 부르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발자크는 한 사람의 상상 속에서 어떻게 모든 인간을 구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소설을 넘어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나를 압도하며 동시에 위로한다.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질 때, 발자크의 작품을 펼치면 나는 깨닫는다. 이 혼돈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무대라는 것을.


발자크를 읽는 순간, 나는 고독 속에서도 덜 외롭다. 그는 나에게 말한다. “너의 욕망과 너의 슬픔, 너의 기쁨은 모두 인간희극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발자크의 세계 안에서 내 삶조차도 하나의 장면으로, 하나의 인물로 받아들인다. 그 세계는 무한히 넓지만, 동시에 나의 고독을 품어줄 만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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