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가설과 불교

by 신성규

인류는 오래전부터 삶의 반복과 결과의 법칙을 설명하려 애써왔다. 동양의 사상 속에서 그것은 업보와 윤회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업보란 인간의 행위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신비한 법칙이며, 윤회란 그러한 결과가 한 생애에 그치지 않고 무수한 생을 거듭하며 이어진다는 믿음이다. 인간은 태어나고, 살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 과정에서 남긴 행위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새로운 삶의 조건으로 환생한다.


이 오래된 사상은 인간을 단지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어떤 더 큰 체계, 보이지 않는 질서 안에 배치된 ‘플레이어’에 가깝다. 삶은 시험장이자 훈련장이며, 깨달음을 얻는 자만이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에 이른다고 여겼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의 과학과 철학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상상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시뮬레이션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절대적인 실재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설계한 거대한 프로그램일 수 있다. 우리의 물리 법칙은 일종의 ‘코드’이고, 우리의 죽음은 단지 한 아바타의 종료일 뿐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시뮬레이션 속 캐릭터이자, 동시에 시뮬레이션 너머의 어떤 플레이어의 그림자라는 뜻이 된다.


이 두 체계를 나란히 놓아보면 묘한 공명이 생긴다. 업보는 ‘도덕적 코드’이며, 시뮬레이션은 ‘기술적 코드’다. 윤회는 캐릭터의 재생성과 닮아 있고, 업보는 점수 기록이나 페널티처럼 작동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통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다고 말하듯, 시뮬레이션 가설에서도 ‘게임의 법칙’을 깨달은 자가 시뮬레이션 너머로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업보와 윤회는 선과 악, 도덕적 의미를 전제로 한다. 선한 행위는 좋은 결과를, 악한 행위는 고통을 불러온다. 그것은 존재의 도덕적 학습을 요구한다. 반면 시뮬레이션 가설은 반드시 도덕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실험일 수도 있고, 무심한 게임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고통도, 시뮬레이션 바깥의 존재에겐 그저 데이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사상이 같은 직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세계가 단순한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고 느껴왔다. 삶은 법칙을 품고 있으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국면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시험받고, 학습하며, 반복 속에서 조금씩 변한다.


결국 업보와 윤회, 시뮬레이션 가설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무엇을 학습하도록 설계된 구조물인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반복되는 생과 세계 속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는 탐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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